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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요즘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지인 대신 AI 챗봇에게 먼저 묻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번 여름 혼자 떠나기 좋은 곳 추천해줘'라고 입력하면 AI는 불과 몇 초 만에 야간 수영장부터 일본 힐링 여행까지 척척 뽑아낸다.
편리하고 신기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스친다. '내가 AI 추천을 이렇게 쉽게 믿어도 되는 걸까?' 심리학자들은 이 질문이 단순한 기술 신뢰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뇌는 선택지가 너무 많을 때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배리 슈워츠 미국 스와스모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2004년 저서 '선택의 역설'에서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결정 만족도가 낮아지고 불안이 커지는 현상을 '선택 과부하(choice overload)'라고 정의했다. 여행지 수천 곳 앞에서 망설이는 현대인이 AI의 명쾌한 추천에 안도감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뇌 입장에서 AI 추천은 일종의 인지적 지름길, 즉 '휴리스틱(heuristic)'이다. 복잡한 계산 없이 빠르게 좋은 답에 도달하려는 뇌의 전략인데, 문제는 이 지름길이 때로 잘못된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특히 AI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정보를 제시할수록 우리는 더 쉽게 비판적 사고를 내려놓는다.
2023년 미국 코넬대 연구팀이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AI가 제시한 정보를 사람이 제시한 동일한 정보보다 평균 34% 더 신뢰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계는 감정이 없으니 더 객관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판단을 흐리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동화 편향(automation bias)'이라고 부른다. 자동화된 시스템의 제안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려는 경향을 뜻한다. 원래는 항공기 파일럿 연구에서 처음 발견된 개념인데, 조종사들이 자동항법장치가 경고를 보내면 자신의 감각보다 기계를 신뢰해 사고가 난 사례들에서 비롯됐다. 린다 로텔리 미국 밴더빌트대 인지심리학과 교수는 AI 시대에 이 편향이 일상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여행 추천 AI가 '이 숙소는 당신에게 딱 맞습니다'라고 말하면,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묻지 않는다. AI가 나의 과거 검색 기록과 소비 패턴을 반영했을 뿐인데도, 마치 나를 잘 아는 친구가 해준 말처럼 받아들인다. 이 착각이 바로 자동화 편향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AI 추천을 따른 뒤 여행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내 선택이 아니었으니 괜찮다'고 자기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책임 전가(responsibility diffusion)'라 하는데, 선택의 결과를 외부로 돌림으로써 자존감을 보호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AI 여행 추천 서비스가 특히 강력한 이유는 '개인화'라는 포장 때문이다. '당신의 취향에 맞춘'이라는 문구 하나가 뇌의 보상회로를 자극한다. 나사렛 왓슨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행동신경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이나 개인 정보를 활용한 메시지에 반응할 때 뇌의 복측피개영역(VTA)이 활성화됐다. 마치 칭찬받을 때와 비슷한 도파민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AI의 개인화는 실제로는 통계적 군집화에 가깝다. 나와 비슷한 소비 패턴을 가진 수십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해 '이 집단은 이런 여행을 좋아하더라'는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다. 개인 맞춤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비슷한 사람들을 위한 평균 추천에 가깝다. 진짜 나만의 여행이 되려면, AI 추천을 출발점으로만 쓰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AI 추천을 무조건 의심하라는 말은 아니다. 핵심은 AI를 훌륭한 '조수'로 쓰되, 최종 판단의 주도권은 내가 쥐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알고리즘 감사(algorithmic appreciation)'라고 부르는데, AI의 도움을 인정하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태도를 뜻한다. AI가 추천한 여행지를 받아들이기 전에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여행인가?'라고 한 번만 더 물어보는 습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AI의 추천 목록을 받아놓고 잠시 화면에서 눈을 떼어 보자. 그 중에서 내 마음이 먼저 끌리는 것을 고르는 것이다. AI가 열어준 선택지 안에서, 최종 버튼은 당신이 눌러야 한다. 그래야 그 여행은 진짜 당신의 여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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