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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그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이 언제부터 집착으로 바뀐 걸까. 대만에서 야구 치어리더가 극성팬에게 흉기로 습격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대만 스포츠 매체 TSNA 등 복수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는 치어리더의 열성 팬으로 알려졌으며 피해자는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단순한 '팬의 일탈'로 치부하기 어렵다. 심리학자들은 이른바 '극성팬'의 행동이 왜곡된 친밀감과 집착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응원이라는 이름 아래 작동하는 심리의 어두운 면, 지금부터 들여다보자.
심리학에는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는 개념이 있다. 시청자나 팬이 유명인과 실제로 교류하지 않으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느끼는 일방적 유대감을 뜻한다. 도널드 호튼과 리처드 월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과 교수가 1956년 처음 개념화한 이후, 수십 년간 팬 심리 연구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 파라소셜 관계가 극단화될 때 생긴다. 린 맥크러스키 미국 플로리다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성인 팬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2003년)에서, 전체의 약 1.4%가 '경계선 병리적 집착' 수준의 팬 행동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숫자는 작아 보이지만, 대규모 팬덤을 가진 유명인에게 적용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이 단계에 이른 팬은 스스로를 상대방과 특별한 관계라고 확신한다. '나는 저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저 사람도 나를 알아볼 것이다'라는 생각이 현실과의 경계를 지운다. 치어리더 피습 사건의 용의자도 이와 유사한 왜곡된 인식 속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기대와 보상을 관장하는 이 신경전달물질은 본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한 것이지만, 유명인을 향한 집착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헬렌 피셔 미국 럿거스대 인류학과 교수는 낭만적 집착 상태에서 활성화되는 뇌 부위가 코카인 중독과 상당 부분 겹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사실상 '팬덤 중독'이 신경생물학적으로 실재한다는 의미다.
더 위험한 것은 거절이나 무관심이 뇌에 주는 충격이다. 에단 크로스 미국 미시건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의 2011년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거절을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물리적 통증을 처리하는 영역과 동일하다. 극성팬이 자신의 존재를 무시당한다고 느낄 때 실제로 '아프다'는 뜻이다.
이 고통이 분노로 전환되는 것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상대방이 '나에게만' 차갑다고 느낄 때, 또는 상대방이 다른 팬에게 더 친절하다고 인식할 때 피해의식과 공격성이 급격히 높아질 수 있다. 이번 사건 역시 그 구체적인 경위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심리학적으로 이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팬 행동이 위험 수위로 넘어가는 징후로 몇 가지를 꼽는다. 상대방의 일상 동선을 파악하려는 시도, SNS 댓글이나 메시지를 통한 반복적인 접촉 요구,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줘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 그리고 거절당했을 때의 폭발적인 감정 반응이 대표적이다. 김태경 건국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파라소셜 관계가 병리적 단계에 이르면 팬은 상대방을 현실 속 인물로 인식하기보다 자신의 욕구를 투영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설명한다.
치어리더나 선수처럼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직군은 특히 취약하다. 경기장이라는 공간 특성상 팬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깝고, 미소와 퍼포먼스가 직업적 역할임에도 팬들은 이를 개인적 친밀감으로 해석하기 쉽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만 야구 당국이 치어리더 및 선수단 경호 시스템 전면 재검토를 약속한 것도 이 같은 구조적 취약성을 인정한 셈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 검거 건수는 2022년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피해자의 직업군도 연예인과 스포츠 종사자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인까지 넓어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팬심은 건강하고 아름답다.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면 삶에 활력이 생기고, 같은 팬들과 연대감을 나누며 사회적 소속감도 얻는다. 심리학자들은 팬 활동 자체가 외로움을 완충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고 오랫동안 강조해왔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상대방을 향한 일방적인 '소유'로 방향을 틀 때다.
응원과 집착의 차이는 결국 하나로 수렴된다. 상대방의 삶과 경계를 존중하는가, 아닌가.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면 그만큼 그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커야 한다. 혹시 주변에 특정인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반복하거나, 거절당했을 때 감정 기복이 심한 지인이 있다면, 가볍게 대화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때로는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작은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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