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 했는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 쇼츠 영상을 넘기고 또 넘겼지만, 정작 무엇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뇌가 썩는 것 같다'는 자조 섞인 말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요즘 Z세대를 중심으로 알고리즘 피로감을 호소하며 극장을 찾고,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 나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 2월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생산성본부가 발간한 '영화콘텐츠 소비 트렌드 연구'에서도 레거시 미디어로의 회귀 흐름이 확인됐다. 단순한 트렌드일까, 아니면 뇌가 보내는 구조 신호일까.
쇼츠나 릴스 같은 초단편 영상 콘텐츠는 볼 때마다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문제는 이 자극이 반복될수록 뇌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는 점이다.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를 '도파민 과부하'로 설명하며, 보상 회로가 과도하게 활성화된 뇌는 일상적인 자극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 자체가 저하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렘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에 반복 노출된 성인은 책 한 페이지를 집중해서 읽는 능력이 평균 40% 가량 감소했다. 뇌가 짧고 강렬한 자극에 최적화되면서, 느리고 깊은 콘텐츠를 처리하는 '느린 사고' 회로가 약해지는 것이다. '뇌가 썩는다'는 표현은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뇌가 실제로 경험하는 변화를 직관적으로 포착한 말인 셈이다.
이 현상은 Z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스마트폰을 쓰는 모든 세대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같은 메커니즘에 노출돼 있다. 당신이 넷플릭스 앞에 앉아서도 자꾸 핸드폰을 집어 드는 이유, 책 첫 페이지에서 자꾸 딴생각이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레거시 미디어로의 회귀를 단순히 '복고 취향'으로 보면 안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율성 욕구'의 회복 시도로 해석한다. 에드워드 데시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정립한 자기결정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한다는 느낌을 가질 때 심리적 안정감과 만족감이 높아진다. 알고리즘은 정반대다. 무엇을 볼지, 얼마나 볼지를 사용자가 아닌 시스템이 결정한다.
극장에서 영화를 고르고, 신문 기사를 내 손으로 넘기는 행위는 작지만 강력한 통제감 회복의 경험이다. 오프라인 독서 모임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2023년 미국심리학회(APA)가 성인 2,18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소셜미디어 사용 시간을 하루 30분으로 제한한 집단은 4주 후 자율성 만족도가 22.4% 상승하고 불안 수준이 17.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이 움직임이 '디지털을 완전히 끊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 독후감을 온라인에 올리고, 신문 사진을 SNS에 공유하는 식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섞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극단적인 단절보다 '선택적 통제'를 택하는 것이 심리적으로도 훨씬 지속 가능한 전략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셈이다.
책이나 신문처럼 긴 텍스트를 읽을 때 뇌에서는 쇼츠를 볼 때와 전혀 다른 영역이 활성화된다. 메리언 울프 미국 UCLA 교육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를 '깊이 읽기'라고 명명하며, 이 과정에서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고 설명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공감, 자기성찰, 창의적 사고를 담당하는 영역으로, 외부 자극이 잠시 멈출 때 비로소 작동하기 시작한다.
울프 교수 연구팀이 2022년 18세에서 35세 성인 3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6주간 매일 20분씩 종이책을 읽은 집단은 공감 능력 지수가 평균 18.3% 향상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도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뇌가 '멍 때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이 사실은 가장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쇼츠를 끊고 극장으로, 신문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 깊고 조용한 시간을 본능적으로 갈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끝없는 자극 속에서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스마트폰을 끊을 필요는 없다. 심리학자들이 권하는 방법은 훨씬 소박하다. 하루 15분, 알고리즘이 골라주지 않은 콘텐츠를 스스로 선택해 천천히 소비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 한 편, 오늘 자 신문의 문화면 기사 하나,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를 혼자 예매하는 것처럼 작은 행위들이 뇌에 '나는 지금 내 시간을 내가 쓰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뇌는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한다. 렘키 교수는 단 2주간의 '도파민 단식'만으로도 일상적인 자극에서 즐거움을 되찾는 능력이 눈에 띄게 회복된다고 말한다. 오늘 저녁, 쇼츠를 넘기는 대신 읽다 멈춘 책의 책갈피를 한 번 꺼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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