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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음주 뺑소니로 구속됐다가 가석방으로 사회에 돌아온 김호중.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사람인데, 그의 복귀를 기다리는 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상한 일일까. 심리학자들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한다.
굴곡진 인생 스토리, 고통을 딛고 일어선 성공 서사.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유독 약하다. 그 서사가 강렬할수록 팬들의 충성도는 높아지고, 때로는 잘못조차 덮어버리는 심리적 방어막이 된다.
폴 잭 미국 클레어몬트대학원 신경경제학과 교수는 2013년 연구에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 뇌에서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이 호르몬이 타인에 대한 공감과 신뢰를 강화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피험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서사에 노출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타인을 돕겠다는 의향이 56% 높았다.
김호중의 스토리는 전형적인 '고난 극복 서사'다. 어린 시절의 어려움, 방황, 그리고 극적인 성공. 이런 이야기 구조는 뇌가 가장 강하게 반응하는 패턴이다. 이미 수년간 이 서사를 내면화한 팬들에게 뺑소니 사건은 서사의 '악당 등장' 장면으로 재해석될 여지가 생긴다.
문제는 이 감정적 반응이 이성적 판단보다 먼저 작동한다는 점이다. 뇌가 서사에 몰입하는 순간, 비판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사실이 복수의 신경과학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리언 페스팅어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1957년 제안한 인지 부조화 이론은 지금도 팬 심리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쓰인다. 자신이 오랫동안 아끼고 지지해온 대상이 나쁜 행동을 했을 때, 사람의 뇌는 심각한 불편감을 느낀다.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취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합리화다.
'언론이 과장한 것이다', '그래도 음악만큼은 진짜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걸 잃어야 하냐'. 팬덤 커뮤니티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 말들은 감정을 지키기 위한 뇌의 자동 방어 반응이다. 잘못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잘못이 자신의 감정적 투자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심리적으로 조율하는 것이다.
특히 오랜 팬일수록 이 현상은 강하게 나타난다. 수천만 원의 콘서트 비용, 수년간의 정서적 애착을 한순간에 '잘못된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심리적으로 매우 고통스럽다. 뇌는 그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이야기를 다시 쓴다.
닐라이 도시 미국 노스웨스턴대 심리학과 교수팀이 2009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과거에 선한 행동을 했다는 인식은 이후의 비윤리적 행동을 스스로 허용하는 경향을 만든다. 이를 '도덕적 면허 효과'라고 부른다. 흥미롭게도 이 효과는 제3자를 평가할 때도 작동한다.
김호중이 과거 방송에서 보여준 눈물, 기부 활동, 소외계층을 위한 콘서트 같은 장면들은 팬들의 기억 속에 '착한 사람'의 증거로 저장된다. 사건이 터졌을 때 뇌는 이 긍정적 기억들을 꺼내 현재의 잘못을 상쇄하려 한다. '그렇게 착하게 살았는데 한 번 실수할 수도 있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이유다.
이처럼 서사, 인지 부조화, 도덕적 면허 효과는 따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맞물리며 팬들의 지지를 유지시킨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정서적 투자가 깊을수록 이 세 가지 기제가 더욱 강하게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좋아하는 감정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그 감정이 판단을 완전히 덮어버릴 때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위해 '감정과 사실의 분리'를 권한다. '나는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과 '그는 음주 뺑소니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둘 중 하나를 지우지 않아도 된다.
팬이라는 정체성이 특정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와 동의어가 될 때, 그 팬덤은 건강하지 않다. 좋아하는 대상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음악은 음악으로 즐길 수 있다. 그 분리의 능력이 결국 나 자신의 판단력과 자존감을 지켜준다. 오늘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내가 이 사람을 지지하는 건 감정인가, 판단인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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