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한때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 번이나 거머쥔 배우가 9년 만에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미국 연예매체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케빈 스페이시는 최근 팟캐스트 '클럽 랜덤'에 출연해 '더 환영받고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의혹으로 업계에서 사실상 퇴출당했던 그가 복귀를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일부 팬들은 '그래도 연기는 천재였잖아'라고 말하고, 진행자 빌 마허는 '한 사람의 주장이라면 판단을 보류해야 한다'고 두둔했다. 우리는 왜 몰락한 스타의 귀환 앞에서 이렇게 쉽게 흔들리는 걸까. 심리학은 그 답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도덕적 관용을 베푼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도덕 면허 효과(Moral Licensing Effect)'라고 부른다. 어떤 영역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사람은 다른 영역의 잘못을 어느 정도 '상쇄'받아도 된다는 인지적 편향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베노이트 모닌 교수 연구팀이 2001년 발표한 연구에서 과거에 선행을 했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후 이기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아졌다. 이 원리는 '유명인을 판단하는 대중의 심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저렇게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뇌 안에서 일종의 면죄부로 작동하는 것이다.
케빈 스페이시의 경우, 그가 '아메리칸 뷰티'와 '유주얼 서스펙트'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연기는 수십 년간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돼 있다. 오랫동안 쌓인 긍정적 인상이 의혹을 맞닥뜨렸을 때 완충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인간의 뇌는 숫자나 사실보다 '이야기'에 훨씬 강하게 반응한다. 미국 프린스턴대 신경과학과 우리 하슨 교수 연구팀의 2010년 연구에 따르면 이야기를 들을 때 화자와 청자의 뇌 활동이 동기화되는 '신경 결합(Neural Coupling)' 현상이 일어난다. 케빈 스페이시가 팟캐스트에서 '나는 이제 더 환영받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청중의 뇌는 그의 서사에 동화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부활 서사'의 매력이 더해진다. 영국 에식스대 심리학과 클리포드 래리치 교수는 2019년 연구에서 사람들이 도덕적 실패 이후 재기하는 인물의 이야기에 특히 강한 감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밝혔다. 추락과 귀환이라는 극적인 구조 자체가 대중의 공감 회로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돌아온 사람'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순간, 비판적 사고는 흐려진다.
팟캐스트 진행자 빌 마허가 '숫자를 본다, 한 사람의 주장이라면...'이라고 말한 것도 이 프레임의 연장선이다. 실제로 케빈 스페이시에게는 수십 명의 고발자가 있었고, 영국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고발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서술하는 것은 사실의 왜곡이다.
대중이 몰락한 스타의 귀환을 반기는 심리의 바닥에는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가 있다. 준사회적 관계란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유명인에게 마치 친밀한 친구처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심리 현상이다. 미국 호튼과 볼 연구팀이 1956년 처음 이 개념을 제시한 이후, 미디어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현대사회에서 더욱 강력해졌다.
2022년 미국 심리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유명인과 준사회적 관계를 형성한 팬일수록 그 유명인이 도덕적 위기에 처했을 때 의혹을 축소하거나 부정하는 경향이 43.7%나 높게 나타났다. 오랜 시간 한 배우의 작품을 사랑하고 그의 인터뷰를 챙겨본 팬에게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마치 가까운 지인을 잃는 것과 유사한 심리적 고통을 준다.
결국 '그래도 연기만큼은 최고였잖아'라는 말은 단순한 옹호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쌓아온 준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뇌의 자기방어 반응이기도 하다.
물론 작품과 창작자를 분리해서 향유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분리가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는 다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심리학과 다허 켈트너 교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저지른 해악일수록 대중이 인지적으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명성과 권력은 그 자체로 판단력을 흐리게 만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왜 이 사람의 귀환을 반기고 싶은가'를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이다. 그것이 순수한 예술적 기대인지, 오랫동안 익숙해진 서사에 대한 애착인지, 아니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뇌의 요청인지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좋아했던 배우의 작품을 여전히 좋아할 수 있다. 다만, 피해자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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