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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학교 단톡방에 갑자기 내 얼굴이 담긴 사진이 퍼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내가 찍은 적 없는 사진, 내가 결코 동의한 적 없는 모습으로 급우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이미지. 최근 한 고등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여학생의 얼굴을 AI로 나체 이미지에 합성한 사진이 퍼졌다는 충격적인 게시글이 올라왔다.
가해 학생들은 처음엔 '그냥 장난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장난처럼 시작되는 이 행동에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위험한 심리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고.
앨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제안한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해로운 행동을 정당화할 때 몇 가지 심리적 전략을 쓴다. 그중 가장 흔한 것이 '무해화(minimization)'다. '별거 아니잖아', '진짜 사진도 아닌데'라는 식의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청소년은 성인보다 이 이탈 기제에 훨씬 더 취약하다. 2022년 미국 사이버심리학·행동·소셜 네트워킹 학술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괴롭힘에 가담한 청소년의 68.3%가 '별 의도가 없었다'고 답했으며, 이 중 실제로 피해자의 고통을 상상해본 경우는 21%에 불과했다.
디지털 화면이라는 매개가 끼어 있기 때문이다. 직접 눈앞에서 상대의 표정을 보며 말하는 것과, 익명의 게시판에 이미지를 올리는 것은 심리적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화면 너머로는 상대의 눈물이 보이지 않는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혼자가 아니라 집단 안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책임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 현상이다. 존 달리와 빕 라타네가 1968년 컬럼비아대에서 진행한 고전 연구에서 확인됐듯, 주변에 사람이 많을수록 개인은 자신의 책임감을 덜 느낀다. 단톡방에 이미지를 퍼뜨릴 때 '나만 한 게 아니니까'라는 심리가 개입하는 것이다.
여기에 또래 집단의 동조 압력이 더해진다. 미국 템플대 신경과학과 로렌스 스타인버그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은 또래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위험 감수 행동이 성인보다 평균 50% 이상 증가한다. '다들 보는 앞에서 재미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도덕적 판단보다 더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문제는 집단 내에서 한 번 그런 콘텐츠가 공유되면, 처음엔 불편했던 구성원도 점차 둔감해진다는 점이다. 반복 노출로 인한 '둔감화(desensitization)'는 피해자의 고통을 점점 '보통 일'처럼 느끼게 만든다.
딥페이크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공통적으로 극심한 통제감 상실을 경험한다고 보고한다. 내 몸, 내 얼굴이 내 동의 없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지속적인 심리적 공포로 이어진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2023년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여성의 88.7%가 일상생활 기능 저하를 경험했고, 74.2%가 외출 공포나 대인 기피 증상을 호소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지속적 외상 스트레스(ongoing traumatic stress)' 반응으로 설명한다. 일반적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과거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면, 디지털 성범죄 피해는 이미지가 삭제됐는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외상이 '현재 진행형'으로 남는다는 점이 더 잔인하다.
가해자들은 '가짜 이미지'라고 말하지만, 피해자가 입는 상처는 결코 가짜가 아니다. 주변에 퍼진 이미지가 실제인지 합성인지조차 증명해야 하는 부담이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돌아오는 구조가 2차 피해를 만든다.
전문가들은 딥페이크 범죄 예방의 핵심이 처벌 강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클레어 허버드 영국 옥스퍼드대 교육학과 교수는 2024년 연구에서 '디지털 공감 교육(digital empathy training)'을 받은 청소년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온라인 괴롭힘 가담률이 41% 낮았다고 밝혔다. 피해자의 입장이 돼보는 역할극, 디지털 행동의 실제 결과를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훈련이 핵심이었다.
AI 기술이 점점 쉽고 빠르게 누구나 쓸 수 있는 도구가 되는 시대다. 기술이 앞서갈수록,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공감 능력과 도덕적 감수성도 함께 자라야 한다. 오늘 자녀와 함께 '누군가의 얼굴을 허락 없이 쓰면 어떤 기분일까'를 딱 한 번만 이야기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짧은 대화 한 번이,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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