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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채팅창에서 누군가 '~노'라는 표현을 썼다. 순간 손가락이 멈췄다. '이 사람, 혹시 일베 아냐?' 경상도 출신인 친구가 무심코 쓴 사투리에도 눈을 가늘게 뜨게 된다. 나만 이런 건 아닌가.
최근 한 방송 PD가 여성 아이돌과 주고받은 '노노' 표현이 논란이 되면서, '~노' 사투리가 혐오 표현인지 아닌지를 두고 온라인이 들끓었다. 단순한 언어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꽤 복잡한 심리학적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인간의 뇌는 본래 패턴을 찾도록 설계되어 있다. 특정 언어 표현이 혐오 집단과 반복적으로 연결되면, 뇌는 그 표현 자체를 위험 신호로 학습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연합 학습(associative learning)'이라 부른다. 한번 각인된 연결고리는 의식적 노력 없이도 자동으로 작동한다.
문제는 이 자동 반응이 맥락을 무시한다는 데 있다. 스탠리 밀그램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서도 확인되듯, 사람들은 외부 신호에 지나치게 의존한 채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강하다. '~노'라는 표현이 경상도 일대에서 수백 년 쓰인 자연스러운 방언이라는 사실은, 혐오 집단과의 연합 기억 앞에서 힘을 잃는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경상도 방언에서 '~노'가 의문형 어미로 광범위하게 쓰인다는 점을 일관되게 지적한다. 국립국어원 표준언어예절 자료에 따르면 '무섭노', '가노', '왔노'는 모두 경상 방언의 표준적 표현이다. 그럼에도 온라인에서는 감별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낯선 상대가 특정 표현을 쓸 때 우리가 그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인간의 집단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자 헨리 타지펠 영국 브리스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사회정체성 이론(social identity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내집단과 외집단을 빠르게 구분하려 하며 이 구분이 위협받으면 강한 불안을 느낀다. 온라인 공간에서 언어가 소속을 드러내는 유일한 단서가 되면서, 언어 감별은 일종의 '자기 보호 행동'이 된다.
2021년 고려대 심리학과 연구팀이 성인 남녀 48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응답자의 61.3%가 온라인 상대의 언어 표현으로 정치 성향을 추론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단어 하나가 사람의 전체 정체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과도 맞닿아 있는데, 한번 의심이 생기면 이후 모든 언어 행동을 그 의심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해석하게 된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방언 사용자들은 실제로 자신의 말투를 숨기거나 교정하는 '언어 자기 검열'을 경험한다. 경상도 출신이라고 밝히기를 꺼리거나, 온라인에서는 의도적으로 표준어만 쓰는 것이다.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지역 정체성 자체를 부정당하는 경험이 된다.
심리학에는 '오염 효과(contamination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단어나 사물이 불쾌한 대상과 연결되면, 원래 그 단어나 사물이 가진 의미까지 오염되는 현상이다. 폴 로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오염 효과는 한번 형성되면 논리적 반박만으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노'가 일베와 연결되기 시작한 순간, 경상도 사투리 자체가 오염된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오염이 일방적으로 확산된다는 점이다. 혐오 집단이 특정 표현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그 집단보다 훨씬 많은 무고한 사용자들이 피해를 본다. 방언을 쓰는 수백만 명이 잠재적 혐오자로 의심받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탄생한 '일베 감별법'이 현실에서 실제 차별로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상징적 오염의 사회화'라고 부른다. 개인의 인식이 아닌, 집단적 의심이 사회 규범처럼 굳어지는 과정이다. 조수진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방언은 지역민의 정체성이자 문화유산인데, 특정 온라인 문화와의 연결로 인해 방언 자체가 소멸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심리학자들은 자동화된 언어 감별 반응에서 벗어나려면 '맥락 전환(context switching)'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단어에 반응하기 전에, 대화 전체의 흐름과 상대방의 다른 언어 행동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실제로 2022년 미국 스탠퍼드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에서 맥락 정보가 주어졌을 때 언어 오해로 인한 부정적 인상이 47.2%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의심의 화살이 방언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방언을 의도적으로 도용한 집단을 향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불안을 가장 손쉬운 표적에 투사하는 것, 그것이 혐오의 확산 방식이기도 하다. 오늘 채팅창에서 '~노'를 쓴 누군가가 있다면, 먼저 그 사람이 건네는 말 전체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언어는 언제나 단어 하나보다 훨씬 큰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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