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경기 하나가 끝났을 뿐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한 선수의 목숨을 위협하는 협박으로 이어졌다. 콜롬비아 대표팀의 다니엘 캄파스가 스위스전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직후, 그의 가족에게까지 살해 협박 메시지가 쏟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축구공 하나가 골대를 빗나갔을 뿐인데, 왜 누군가의 분노는 이토록 폭력적으로 변하는 걸까.
이 사건은 콜롬비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4년 월드컵 자책골을 넣은 뒤 귀국해 총에 맞아 숨진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의 비극이 3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스포츠 팬의 분노가 선수 개인을 향한 위협으로 돌변하는 이 현상, 심리학은 무엇이라 말할까.
사람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길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가고, 질 때는 코르티솔, 즉 스트레스 호르몬이 급격히 상승한다. 미국 조지아주립대 심리학과 제임스 댑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팀의 승패는 팬의 생리적 반응에서 마치 자신이 직접 경기에 나선 것과 유사한 수준의 변화를 일으킨다.
이 현상은 심리학에서 '바스킹 인 리플렉티드 글로리(BIRGing)', 즉 반사 영광 누리기로 설명된다. 팀이 이기면 '우리가 이겼다'고 말하고, 지면 '그들이 졌다'며 거리를 두는 심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일부 팬들은 이 거리 두기에 실패한다. 팀의 패배가 곧 자신의 실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자아가 팀 정체성과 너무 깊이 융합된 상태, 심리학자들은 이를 '과잉 동일시(over-identification)'라 부른다.
영국 레스터대 심리학과 대니얼 왓슨 교수는 2019년 유럽 축구 팬 2,4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팀 정체성 점수가 높을수록 패배 후 공격적 행동 충동이 평균 41% 더 높게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팬덤이 깊을수록 패배의 상처는 더 날카롭게 파고든다는 뜻이다.
팀 전체가 졌는데 왜 분노는 특정 선수 한 명에게 집중될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희생양 만들기(scapegoating)' 현상으로 설명한다. 복잡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하나의 대상에게 투사함으로써 심리적 부담을 줄이려는 무의식적 기제다. 캄파스가 '놓친 찬스'라는 구체적인 장면을 제공했을 때,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의 뇌는 그 장면을 패배의 '원인'으로 단순화해 버린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제니퍼 에버하트 교수는 집단이 좌절감을 경험할 때 분노의 대상이 얼마나 빠르게 단일화되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팀 스포츠 환경에서 '한 명의 결정적 실수'가 있을 경우, 팬들의 80% 이상이 복합적 원인보다 그 한 명을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지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우리의 뇌는 복잡한 인과관계보다 단순하고 명확한 적을 원한다.
여기에 온라인 환경이 더해지면 분노는 증폭된다. 화면 뒤에 숨을 수 있다는 익명성,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개인의 충동적 분노를 집단적 위협으로 키운다. 이른바 '탈억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다. 오프라인에서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말을 화면 앞에서는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등 축구에 국가 정체성을 강하게 결부시키는 나라에서 이런 사건이 더 자주 발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포츠가 단순한 여가가 아닌 국가적 자부심과 동일시될 때, 패배는 개인의 실망을 넘어 '국가적 치욕'으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선수는 국민의 영웅이 되거나, 국민의 적이 되거나 둘 중 하나로 극단화된다.
영국 퀸즐랜드대 심리학과 나타샤 드 사일라 교수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기간 동안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선수 관련 위협 메시지 14만여 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패배 직후 12시간 이내에 올라온 메시지의 67%가 단 한 선수를 겨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올린 계정의 58%는 해당 경기 이전까지 아무런 공격적 게시물을 올린 이력이 없었다. 평범한 사람도 특정 상황에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선수 개인의 실수나 팬들의 도덕성 문제만이 아니다.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스포츠 결과와 자아를 얼마나 분리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패배가 곧 내 삶의 실패처럼 느껴지는 사람일수록 분노 조절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심리학 연구들은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중요한 경기를 보다 보면 누구나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 수 있다. 그 감정 자체는 자연스럽다. 문제는 그 감정이 어디로 향하느냐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마크 워드 교수는 스포츠 관람 후 분노가 급격히 치솟는 경험을 한다면, 그것이 경기에 대한 불만인지 아니면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촉발된 것인지를 구분해 볼 것을 권한다. 많은 경우 경기는 방아쇠일 뿐, 총알은 이미 다른 곳에서 장전돼 있다는 것이다.
응원하는 팀이 졌을 때 며칠씩 무기력하거나, 선수의 실수가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스포츠와 자신의 정서적 거리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오늘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당신의 하루는 여전히 괜찮다. 선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2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