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최선을 다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실수를 했다. 그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죽음의 협박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202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페널티킥을 놓친 콜롬비아 대표팀 공격수 다니엘 캄파스는 경기 직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살해 협박 메시지를 받았다.
32년 전인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자책골을 넣은 콜롬비아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귀국 직후 총격으로 숨졌다. 그 비극이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다시 세계 축구계를 뒤흔들고 있다. 도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선수의 실수에 이토록 극단적인 분노를 쏟아내는 걸까.
스포츠 팬덤 심리를 연구해온 대니얼 웨인 미국 켄트주립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팬들이 자신을 응원하는 팀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현상을 '버스킹 인 리플렉티드 글로리(BIRG)', 즉 '반사된 영광에 목욕하기'라고 설명한다. 팀이 이기면 나도 이긴 것처럼 느끼고, 팀이 지면 나 자신이 패배한 것처럼 느끼는 심리적 메커니즘이다. 문제는 이 동일시가 지나치게 강해질 때다.
팀의 패배를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팬은 분노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라고 부른다. 팀이 진 복잡한 이유를 직시하기보다, 가장 눈에 띄는 실수를 한 한 선수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캄파스의 실축은 바로 그 분노의 과녁이 됐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직후 영국 카디프대 폭력연구소가 발표한 분석에 따르면, 주요 국제 축구 대회 기간 소셜미디어에서 선수를 향한 폭력적 위협 메시지는 평소 대비 최대 340%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포츠 패배가 온라인 증오를 폭발시키는 도화선이 된다는 사실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오프라인에서라면 결코 협박 편지를 쓰지 않을 사람이 온라인에서는 살해 협박 댓글을 아무렇지 않게 남긴다. 필립 짐바르도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제시한 '몰개성화(Deindividuation)' 이론이 이를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이 집단 속에 묻힐 때,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훨씬 쉽게 저지른다.
소셜미디어는 이 몰개성화를 가속화하는 완벽한 환경이다. 익명 계정 뒤에 숨거나, 수천 명이 같은 방향으로 분노를 쏟아내는 모습을 보면서 '나만 이러는 게 아니다'라는 착각이 강해진다. 아이오와대 클레이턴 크릭로우 사회심리학과 연구팀이 2021년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익명 조건에서 공격적 메시지를 보낼 의향이 실명 조건보다 평균 2.8배 높게 나타났다.
더 무서운 건 이 분노가 '정의'처럼 포장된다는 점이다. '우리 팀을 망쳤으니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고 부른다. 폭력적 위협을 가하면서도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상태다.
1994년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줬다. 그러나 그 비극적 기억이 콜롬비아 사회 전체에 '선수를 향한 폭력은 절대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로 자리잡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번 협박 사태로 드러났다. 피터 달그렌 스웨덴 룬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교수는 집단적 트라우마가 문화적 반성으로 이어지려면 사회 전체의 지속적인 교육과 제도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억만으로는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패배의 고통이 크고 익명의 창구가 열려 있다면 충동은 이성을 압도한다. 실제로 FIFA와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는 2024년 보고서에서 조사 대상 선수 중 38%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살해 협박이나 심각한 폭력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스포츠는 원래 대리 만족이다. 직접 뛸 수 없는 우리가 선수의 몸을 빌려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리 만족이 '대리 복수'로 뒤바뀌는 순간, 팬과 선수의 관계는 무너진다. 국가대표를 꿈꾸며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견뎌온 선수의 인생이, 한 번의 실수로 온라인 폭력의 과녁이 되는 현실은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언 스틸 영국 러프버러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선수를 한 명의 인간으로 보는 훈련'이 극단적 팬덤 폭력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유니폼 번호가 아니라 이름을 기억하고,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음 번에 내가 응원하는 팀이 결정적인 순간에 지더라도, 분노의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리기 전 잠깐 멈춰보는 건 어떨까. 그 선수도 이기고 싶었다. 당신만큼, 아니 당신보다 훨씬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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