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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요즘 학부모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말이 있다. '우리 남편이 수학 문제집 직접 다 풀어보고 아이한테 가르쳐줘요.' '아빠가 학원 원장 만나서 커리큘럼 다 따졌대요.' 예전엔 입시 전선을 이끌던 이가 주로 엄마였다면, 이제는 아버지들이 직접 전면에 나서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교육계에서는 이 현상을 '바짓바람'이라 부른다. 치맛바람에 빗댄 말이지만, 그 열기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아이를 위한다는 이 뜨거운 마음이, 정작 아이에게는 어떻게 느껴지고 있을까.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교육심리학과 웬디 그롤닉 교수는 부모의 관여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눈다. 자녀의 자율성을 지지하는 관여와, 부모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통제적 관여다. 그롤닉 교수 연구팀이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 500곳 이상을 분석한 결과, 부모가 통제적으로 관여할수록 아이의 내재적 학습 동기는 오히려 유의미하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관여하는 부모 본인이 자신의 행동을 '통제'가 아닌 '지원'으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스스로는 아이를 돕고 있다고 믿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나 혼자 해낼 능력이 없다'는 메시지로 전달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긍정적 의도의 부정적 귀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아버지의 경우, 과거 세대에 비해 육아 참여도가 높아진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 아버지들이 자녀 입시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교육계 분석에 따르면 이 세대는 수능 체제를 직접 경험한 첫 세대로, 입시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만큼 개입의 강도도 세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 미국 로체스터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공동 개발한 자기결정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심리적 건강은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기본 욕구가 충족될 때 유지된다. 이 가운데 자율성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한다'는 감각이다. 부모가 공부 방식, 학원 선택, 시간 배분까지 모두 대신 결정해주는 환경에서 아이의 자율성 욕구는 만성적으로 결핍된다.
자율성이 지속적으로 침해된 청소년은 단기적으로는 성적을 유지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번아웃, 무기력감, 결정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일 위험이 높다. 2022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중고등학생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도 부모의 학습 개입 강도가 높을수록 학습 소진 경험 비율이 최대 38.4%까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건 이 같은 현상이 성적이 우수한 아이일수록 더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잘하는 아이에게는 더 높은 기대가 따라붙고, 부모의 관여도 더 촘촘해지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빈틈없어 보이는 아이가 속으로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심리학자들은 바짓바람의 배경에 아버지 자신의 심리적 동기가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중년 남성이 직장과 사회에서 느끼는 성취 불안, 혹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자녀를 통해 이루려는 대리 성취 욕구가 교육 개입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대리 자아 확장'이라고 부른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캐럴 드웩 교수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발견된다. 부모가 자녀의 성취를 자신의 정체성과 강하게 연결할수록, 아이는 실패에 대한 극단적 공포를 갖게 되고 도전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아이에게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성적표를 들고 혼자 학원에 달려가는 부모의 행동은 아이에게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물론 모든 아버지의 관심이 해롭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무엇을' 관여하느냐다. 아이의 감정 상태를 묻고, 스트레스를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 방향을 아이 스스로 정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은 오히려 아이의 심리적 안전감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존재하되 개입하지 않는' 태도를 권한다. 아이 곁에 있되, 아이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하루 10분, 학업이 아닌 아이의 일상과 감정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심리적 안전감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녀가 틀린 문제를 스스로 고민하도록 5분만 기다려주는 것, 학원 선택을 아이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 성적 대신 오늘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는지를 묻는 것.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된다. 작은 신뢰의 신호가 쌓일 때, 아이는 비로소 스스로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오늘 저녁, 문제집 대신 아이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요즘 공부하면서 제일 재밌는 게 뭐야?' 그 짧은 질문 하나가, 어떤 과외보다 오래 기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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