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운동장에서 막말이 터졌다. 거친 몸싸움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김없이 쏟아지는 반응은 하나다. '저 선수는 원래 저런 사람이야.' 우리는 습관적으로 사건을 개인의 됨됨이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심리학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왜 특정 환경에 놓이면 평범한 사람도 공격적으로 변하는가. 고교 스포츠 현장에서 잇따르는 인성 논란은 어쩌면 선수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놓은 구조의 문제일지 모른다.
심리학에는 '근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는 개념이 있다. 타인의 행동을 설명할 때 상황의 영향력은 과소평가하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탓으로 돌리는 인지적 편향이다. 리 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1977년 처음 명명한 이 개념은 이후 수백 건의 실험을 통해 반복 입증됐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누군가 운동장에서 욕설을 내뱉으면 우리는 '저 사람은 원래 나쁜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런데 그가 얼마나 극심한 경쟁 압박을 받고 있었는지, 코치에게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받아왔는지는 잘 따지지 않는다.
2019년 스포츠심리학 전문지 '저널 오브 어플라이드 스포츠 사이콜로지'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엘리트 스포츠 환경에 장기간 노출된 청소년 선수의 68%가 '이기기 위해서라면 규칙 위반도 괜찮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보고했다. 이는 개인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 이론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했다. 평소에는 양심적인 사람도 특정 상황에서는 자신의 반윤리적 행동을 정당화하며 스스로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다들 하잖아', '우리 팀을 위해서였어', '저쪽이 먼저 도발했어' 같은 생각들이 바로 도덕적 이탈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스포츠 환경은 도덕적 이탈이 유독 쉽게 일어나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극도의 승부욕, 집단 소속감, 코치와 선배로부터 내려오는 위계적 문화가 뒤섞이면 '이기는 것이 곧 선(善)'이라는 믿음이 자리를 잡는다. 결국 반칙도, 폭언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합리화된다.
반두라 교수의 연구에서 청소년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측정한 도덕적 이탈 점수는 일반 청소년보다 평균 22% 높게 나타났다. 더 주목할 만한 사실은 훈련 강도나 성적 압박이 높을수록 이 수치가 함께 올라갔다는 점이다.
심리학에는 '상황의 힘(Power of Situation)'이라는 개념도 있다. 1971년 필립 짐바르도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진행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평범한 대학생들이 단 며칠 만에 교도관 역할을 하면서 잔인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구조가 그런 행동을 유도했기 때문이다.
고교 스포츠 현장도 마찬가지다. '1등 아니면 낙오자'라는 이분법, 선수 개인의 감정보다 성과를 우선시하는 문화, 실수에 대한 가혹한 비난이 반복되면 선수들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적 공격성을 키워간다. 바람이 불면 풀이 그 방향으로 눕듯, 환경이 태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가브리엘 로버츠 미국 미시간대 스포츠심리학과 교수는 2022년 발표한 연구에서 '성과 중심 환경(Performance Climate)'에 놓인 선수는 '숙련 중심 환경(Mastery Climate)'에 놓인 선수보다 반사회적 행동을 보일 확률이 3.1배 높다고 밝혔다. 이기는 것만 가르치는 환경이 인성을 갉아먹는다는 의미다.
물론 개인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사람은 존재한다. 하지만 인성 논란이 터질 때마다 선수 한 명을 지목해 비난하고 끝내는 방식은 문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못한다. 같은 구조 안에서 다음 누군가가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심리학자들은 스포츠 환경에서 인성 교육이 효과를 갖추려면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하고,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코치의 태도 변화가 먼저라고 강조한다. 코치 한 명의 언어 습관, 훈련 방식, 경쟁에 대한 가치관이 수십 명 선수의 태도를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가 반복해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한 선수의 돌발 행동을 뉴스에서 봤다면, 잠깐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건 어떨까. '저 선수가 나쁜 걸까, 아니면 저 선수를 저렇게 만든 환경이 문제일까.' 그 질문 하나가 운동장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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