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하고 돌아온 집이 텅 비어 있다. 식탁에 혼자 앉아 배달 앱을 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살다가 아프면 어떡하지?' 연락할 가족도 없고, 귀찮게 하기 싫은 친구들만 있다. 혼자인 게 편하다고 여겼는데, 어느 순간 그 편함이 두려움으로 바뀌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를 넘어섰고 그 중 상당수가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 '가족이 있으면 외롭지 않겠지'라는 생각도 착각이다. 가족 안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존 카시오포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는 20년 넘게 외로움을 연구한 끝에 충격적인 결론을 내렸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신체적 통증과 동일한 신경 회로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 뇌는 사회적 단절을 물리적 고통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다.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이 단순한 비유가 아닌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외로움이 만성화될 때다. 카시오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 외로움을 경험하는 사람은 코르티솔(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지속적으로 높게 유지되고, 면역 기능이 평균 대비 26% 저하된다. 수면의 질도 떨어지고 심혈관 질환 위험도 높아진다. 외로움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외로운 상황을 스스로 선택할까. 심리학에서는 이를 '과경계 반응'으로 설명한다. 과거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뇌가 새로운 연결 자체를 위협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호하려다 오히려 더 고립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가족이 있어도 외롭다고 느끼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관계적 고립'이라고 부른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정서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상태다. 최나야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4년 성인 남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3%가 '가족과 함께 살면서도 외로움을 자주 느낀다'고 답했다.
관계적 고립이 위험한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도 당사자 스스로도 '나는 혼자가 아니잖아'라며 외로움을 부정하게 된다. 하지만 정서적 연결 없이 함께 사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는 혼자 사는 것과 스트레스 반응이 거의 동일하게 나타난다. 오히려 기대와 현실의 간극 때문에 더 깊은 상실감을 낳기도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외로움을 글로벌 공중보건 위기로 선언하며, 비비크 머시 미국 공중보건국장의 보고서를 인용해 '친밀한 사회적 관계가 없는 상태는 조기 사망 위험을 29% 높인다'고 경고했다. 이제 외로움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나는 원래 혼자가 편해.' 그런데 심리학은 이 말을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스튜어트 뉴섬 영국 브리스톨대 임상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사회적 접촉을 회피하며 느끼는 안도감은 진짜 편안함이 아니라 '회피 강화'다. 불안을 피했을 때 느끼는 일시적 해소감이 마치 편안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이 반복되면 관계를 맺으려는 시도 자체가 점점 줄어든다. 실제로 고독을 선호하는 성인 800명을 3년간 추적한 연구에서, 71.8%는 처음부터 혼자가 좋았던 게 아니라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상처받은 뒤 고립을 선택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혼자가 편한 것이 아니라, 관계가 두려워진 것이다.
영국과 독일은 이미 이 문제를 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하고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고, 독일은 '사회적 처방제'를 통해 고립된 시민을 지역 커뮤니티 활동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외로움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중보건 이슈로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뇌는 변한다. 존 카시오포 교수 연구팀은 만성적 고립 상태에 있던 성인들에게 하루 10분씩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실험을 6주간 진행했다. 그 결과 참가자의 68%에서 코르티솔 수치가 낮아졌고, 수면의 질과 주관적 행복감이 유의미하게 향상됐다. 거창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심리학자들이 권하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은 '약한 유대 관계의 복원'이다. 단짝 친구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괜찮다. 단골 카페 직원과 날씨 이야기를 나누고, 자주 마주치는 이웃에게 먼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이런 작고 가벼운 접촉들이 뇌에는 '나는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오늘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긴 안부 대신 짧은 메시지 하나를 보내보는 건 어떨까. '잘 지내? 생각나서.'라고 적는 그 열 글자가, 당신의 뇌가 오늘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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