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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스타가 웃으며 악수를 건네고, 생일 메시지에 직접 답글을 달아준다. 팬은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한다. '우리는 특별한 사이'라고 느끼면서. 그런데 그 친밀감이 진짜일까,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감정의 착각일까.
최근 배우 황정민을 둘러싼 폭로 공방이 연일 뜨겁다. 단순한 연예계 스캔들처럼 보이지만, 심리학자들은 이 사태의 본질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팬과 스타 사이의 경계가 무너질 때 생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에는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는 개념이 있다. 1956년 도널드 호튼과 리처드 울 미국 시카고대 사회학 연구팀이 처음 정의한 이 개념은, 시청자나 팬이 미디어 속 인물에게 실제 대인관계와 유사한 친밀감을 느끼는 현상을 말한다. 문제는 이 감정이 일방적이라는 점이다.
제니퍼 포섬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바버라 캠퍼스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2021년 성인 팬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4%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그 중 41.2%는 스타와 실제로 대화를 나눈 경험이 없음에도 그렇게 느꼈다.
스타가 SNS에 일상을 올리고 팬의 댓글에 하트를 누르는 행위는 이 준사회적 관계를 강화한다. 뇌 입장에서는 진짜 친구의 관심과 유사한 옥시토신 분비가 일어난다. '동네형처럼 친근한 황정민'의 이미지가 일부 팬에게 실제 관계의 착각을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준사회적 관계가 위험해지는 순간은 팬이 그 관계를 '호혜적'이라고 믿기 시작할 때다. 나도 그를 아끼고, 그도 나를 특별히 여길 것이라는 착각. 심리학자들은 이를 '친밀감 착각(Illusion of Intimacy)'이라고 부른다. 마크 레비 미국 노스이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9년 연구에서 이 착각이 강할수록 스타의 사생활 영역에 대한 '접근 권리감'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번 황정민 사태에서 논란이 된 부분도 이와 맞닿아 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폭로의 출발점에는 팬과 스타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진 상황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타의 소탈하고 친근한 태도가 일부 팬에게는 '선을 넘어도 된다'는 신호로 읽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가 이 착각을 조장하는 구조를 갖고 있기도 하다. 팬 사인회, 팬 미팅, 유료 라이브 방송에서의 직접 소통은 팬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설계된다. 하지만 이 구조는 동시에 '우리는 남다른 관계'라는 왜곡된 신념도 함께 심어준다.
유명 연예인을 향한 폭로가 끊이지 않는 데는 심리학적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우선 '주목 편향(Attention Bias)' 때문이다. 공개 폭로는 즉각적으로 대중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폭로자에게 강력한 존재감을 부여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수십만 명에게 전달되는 경험은 강렬한 심리적 보상이 된다.
여기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도 더해진다. 대중은 자신이 이미 가진 인식, 즉 '유명인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에 맞는 정보는 쉽게 믿고 공유한다. 반박이나 해명은 같은 속도로 퍼지지 않는다. 이것이 폭로와 반박이 나오면 또 다른 폭로가 이어지는 공방의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다.
김수환 고려대 심리학과 연구원이 2023년 소셜미디어 이용자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연예인 관련 부정적 폭로 게시물은 긍정적 콘텐츠에 비해 공유 속도가 평균 3.2배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뇌의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때문이다.
그렇다면 팬은 어떻게 이 함정을 피할 수 있을까. 심리학자들은 '준사회적 관계를 즐기되, 그것이 일방적 관계임을 인식하는 메타인지'를 길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스타를 좋아하는 감정은 충분히 진짜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 감정이 상대에게도 동일하게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는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스타와 팬 모두에게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는 보호막이 된다. 친근함을 무기로 삼는 엔터테인먼트 전략이 팬심을 키우는 동시에 갈등의 씨앗도 함께 뿌린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응원하고 싶다면, 오늘 이 질문을 한번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그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내가 상상한 그를 좋아하는가?' 그 답이 무엇이든, 팬심을 더 단단하고 건강하게 지키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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