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니크 키리오스. 코트 위에서 라켓을 집어 던지고, 관중석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심판에게 거친 말을 퍼붓던 그 테니스 선수가 이번엔 코카인 도핑으로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말을 남긴 채.
대중은 또 한 번 고개를 젓는다. '재능은 천재인데 왜 저럴까.'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이 질문에 다른 방향으로 답한다. '왜 저러는 걸까'가 아니라, '왜 저럴 수밖에 없었을까'라고.
키리오스는 세계 랭킹 22위까지 올랐고, 2022년 윔블던 결승에서 노박 조코비치와 맞붙었다. 누가 봐도 정점이었다.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이 '정점'이 오히려 붕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캐럴 드웩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능력이 타고난 재능에서 비롯됐다고 믿는 사람일수록 실패에 취약하고 자기 파괴적 행동에 빠질 위험이 높다.
키리오스 본인도 여러 인터뷰에서 '테니스가 즐겁지 않다', '억지로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정체성 융합'의 위험 신호다. 자신이 곧 테니스이고, 테니스가 곧 자신인 상태에서 경기 결과 하나하나가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뇌는 극도의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자극을 찾게 된다. 문제는 그 자극이 언제나 건강한 방향을 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조지아대 신경과학과 그레고리 번스 교수팀이 202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극도의 경쟁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사람의 뇌는 일상적인 보상에 반응하는 도파민 수치가 평균보다 현저히 낮아진다. 쉽게 말해, 보통 사람이 맛있는 음식이나 친구와의 대화에서 느끼는 기쁨을 이들은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경기장에서 수만 명의 함성을 들어온 뇌가 일상의 소소한 자극에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쾌감불감증(Anhedonia)'이라고 부른다.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 무뎌진 것이다.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일부 운동선수들은 약물이나 알코올, 도박 같은 극단적인 자극에 손을 뻗게 된다. 키리오스가 코카인이라는 선택을 한 배경에 단순한 유혹 이상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세계반도핑기구(WADA)는 코카인을 '남용 물질'로 분류한다. 스포츠 경기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보다는 심리적 도피나 자극 추구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키리오스의 코트 위 행동은 수년간 논란이었다. 심판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신의 라켓을 부수고, 경기 도중 포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를 단순히 '나쁜 성격'으로 볼 수 없다고 영국 레스터대 스포츠심리학과 마크 버만 교수는 말한다. 2021년 스포츠 엘리트 선수 21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버만 교수팀은 코트나 그라운드 위에서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의 63.4%가 경기 밖에서도 충동 조절 문제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감정 조절 능력은 훈련된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재능 있는 선수'로만 주목받으며 심리적 훈련 없이 성장한 경우, 그 능력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할 수 있다. 키리오스 역시 10대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프로 무대에 올랐다. 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배울 시간이 충분했을까.
키리오스 사태를 바라보며 우리는 또 한 번 '실망했다'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하지만 잠깐 생각해보자. 우리는 스타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해왔을까. 경기에서 이기는 것, 품위 있게 지는 것, 인터뷰에서 겸손한 것, 사생활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것. 이 모든 것을 동시에 해내도록 강요하는 시선이 오히려 그들을 더 빠르게 소진시키는 것은 아닐까.
호주 멜버른대 스포츠심리학과 케이트 헤이스 교수는 2022년 연구에서 대중의 이상화와 비난의 사이클이 선수의 자기효능감을 급격히 낮추고, 이것이 반사회적 행동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팬들의 과도한 기대와 언론의 집중 조명이 선수를 망가뜨리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키리오스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 안에 어떤 무게가 담겼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다음에 당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실망보다 먼저 '저 사람도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닐까'라는 질문을 한번 던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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