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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은가. 분명 잊으려 했는데, 자꾸만 그 장면으로 돌아가게 되는 그 느낌. 홍콩 영화계의 전설 장만옥이 최근 35년 만에 음악 무대에 서며 한 말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건드렸다. '사람들의 말이 두렵다'고.
수십 년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배우조차 타인의 시선 앞에서는 몸을 움츠러들었다는 고백이다. 화려한 커리어와 무관하게, 타인의 평가에 흔들리는 건 누구에게나 깊이 새겨진 심리적 반응이다. 도대체 왜 우리는 남의 말에 이렇게까지 상처받는 걸까.
나오미 아이젠버거 미국 UCLA 심리신경과학과 교수는 2003년 발표한 연구에서 사회적 거부를 경험할 때 뇌의 배측 전방 대상 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영역은 신체적 통증을 처리하는 부위와 정확히 같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비판받거나 무시당하는 느낌은 실제 신체 통증과 동일한 경로로 처리된다는 것이다.
진화적으로 보면 이유가 있다. 인류가 무리 생활을 하던 시절, 집단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타인의 부정적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생존 본능의 흔적인 셈이다. 장만옥이 느낀 '두려움'도 결국 오랫동안 인간 안에 내재된 이 오래된 경보 시스템이 울린 결과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이 경보가 너무 자주, 너무 강하게 울린다는 점이다. SNS 댓글, 포털 기사 반응, 주변의 수군거림까지, 자극의 양과 속도가 뇌의 처리 한계를 훌쩍 넘어버린 지 오래다.
토머스 길로비치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 교수가 2000년 학술지 '성격 및 사회 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실험 참가자들은 민망한 티셔츠를 입고 낯선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약 46%의 사람이 자신의 셔츠를 알아봤을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로는 23%에 불과했다.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쏟는 주의를 2배 이상 과장해서 받아들인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스포트라이트 효과'라고 부른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처럼 세상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다는 착각이다. 장만옥이 무대를 떠나 있던 수십 년 동안, 그리고 돌아오기를 망설이던 시간 동안 느꼈을 공포도 이 효과와 무관하지 않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평가'의 상당 부분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훨씬 짧은 시간 안에 잊힌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주목의 과대평가'라고도 표현한다.
장만옥은 과거 연인과의 관계가 악의적 스캔들로 부풀려지고, 신문들이 앞다투어 그녀의 사생활을 소비하던 시절을 겪었다. 크리스틴 노렌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교수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반복적인 부정적 미디어 노출을 경험한 공인은 일반인 대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일 확률이 3.2배 높았다. 단순한 심리적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다.
반대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심리도 흥미롭다. 에이미 버코위츠 미국 조지메이슨대 사회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서 익명 환경에 놓인 사람은 평소보다 공격적 언어를 사용할 확률이 최대 68% 증가했다. 익명성이 만드는 '탈억제 효과'다. 모니터 뒤에서는 현실에서라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을 거리낌 없이 쏟아낸다.
결국 악플의 생태계는 쏘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모두 손상시킨다. 누군가를 향한 말이 상대방의 뇌에 실제 통증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장만옥은 두렵다고 고백하면서도 무대에 섰다. 이것이 핵심이다. 수잔 데이비드 미국 하버드 의대 심리학자는 저서 '감정적 민첩성'에서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을 인정한 채 행동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부정적 감정을 억누르거나 회피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다음 발을 내딛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수용 기반 행동'이라 부른다. 불안을 제거하려 애쓰기보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오히려 불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부정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편도체 반응이 약 40% 감소한다는 결과가 있다.
타인의 말이 두려운 날이 있다면, 그 두려움을 굳이 없애려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지금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워'라고 조용히 인정해보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오늘 해야 할 작은 한 걸음을 내딛어보는 것. 35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 장만옥처럼, 당신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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