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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영상 하나를 보고 나면 비슷한 영상이 줄줄이 뜬다. '이 종목 지금 안 사면 평생 후회',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는 제목의 영상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처음엔 그냥 보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손가락이 먼저 증권 앱을 열고 있다.
핀플루언서, 즉 금융 인플루언서가 쏟아내는 투자 콘텐츠에 이끌려 섣불리 주식을 매수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이야기가 늘고 있다. 이건 단순한 투자 실패가 아니다. 우리 뇌가 알고리즘과 집단 심리에 정교하게 조종당한 결과다.
유튜브나 틱톡의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오래 머물수록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노출한다. 투자 영상을 한 번 클릭하면 비슷한 영상이 반복 노출되고, 결국 '이 종목은 무조건 오른다'는 주장만 가득한 정보의 거품 속에 갇히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즉 메아리 방 효과라고 부른다.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2017년 저서 '리퍼블릭닷컴 2.0'에서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동질적인 정보 집단 안에 가두어 판단력을 흐린다고 경고했다. 한쪽 방향의 정보만 계속 접하면 그것이 사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고, 반대 의견은 오히려 이상하게 들린다. 투자 판단이 흔들리는 건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이 과정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내가 스스로 정보를 찾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 선별해 건네준 정보를 받아든 것에 불과하다.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느낌 자체가 착각인 셈이다.
핀플루언서 콘텐츠가 특히 위험한 이유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즉 소외 공포증을 정밀하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나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공포는 전두엽, 즉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보다 편도체가 먼저 반응하게 만든다. 공포가 생각보다 빠르다.
댄 애리얼리 미국 듀크대 행동경제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손실 가능성에 직면했을 때 이익을 얻을 때보다 약 2.5배 더 강하게 반응한다. '이 종목 오늘 안 사면 끝'이라는 문구는 단순한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뇌의 손실 회피 본능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심리 공격에 가깝다.
가수 김종국이 한 방송에서 FOMO 현상을 언급하며 공감을 표했듯, 이 감정은 투자 전문가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는다. 배우 지예은은 주식 첫 도전에서 수익률 마이너스 47%를 기록했다고 털어놓았다. 정보가 없어서가 아니라, 정보가 너무 많고 너무 자극적이었던 탓이다.
핀플루언서 영상 아래 달린 '저도 샀어요', '벌써 10% 올랐네요' 같은 댓글들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효과를 극대화한다. 로버트 치알디니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설득의 심리학'에서 불확실한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밝혔다. 남들이 다 산다면 나도 사야 할 것 같다는 느낌, 그게 바로 설계된 심리다.
2023년 한국투자자보호재단이 성인 투자자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38.4%가 SNS나 유튜브 콘텐츠를 주요 투자 정보 출처로 꼽았다. 그중 투자 손실 경험자의 61.7%는 해당 콘텐츠를 보고 나서 충동적으로 매수 결정을 내렸다고 답했다. 알고리즘이 만든 군중심리가 실제 손실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손실 이후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손실을 만회하려는 욕구가 다시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게 만들고, 알고리즘은 그런 사용자에게 더 강한 콘텐츠를 추천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손실 추격(loss chasing)' 행동이라고 부르며, 도박 중독과 유사한 신경학적 패턴을 보인다.
엘케 베버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는 충동적 금융 결정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72시간 규칙'을 제안한다. 어떤 투자 정보를 접하고 매수 충동이 생겼을 때 즉시 행동하지 않고 72시간을 기다리면, 편도체 반응이 가라앉고 전두엽의 이성적 판단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의 영향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의외로 단순하다. 유튜브 시청 기록을 주기적으로 삭제하거나, 특정 투자 채널의 알림을 끄는 것만으로도 추천 알고리즘의 고리가 느슨해진다. 좋아하는 영상 채널 목록을 스스로 구성하고, 반대 의견을 담은 콘텐츠를 의도적으로 찾아보는 습관도 에코 체임버를 깨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 투자 영상을 보고 싶다면, 먼저 이 질문 하나를 해보자. '이 정보를 지금 당장 접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종목을 살 생각을 했을까?' 그 대답이 '아니오'라면, 지금 움직이는 건 내 판단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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