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폭력적인 모습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끔찍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주변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한다. 중국인 유학생 살해 피의자를 아는 병원 관계자도 똑같은 말을 했다. 평범했다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우리는 흔히 나쁜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다고 믿는다. 눈빛이 다르거나, 말투가 험하거나,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을 거라고. 하지만 심리학은 오래전부터 이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 경고해왔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도덕적 분리(moral disengagement)'로 설명한다. 캐나다 맥길대 심리학과 도널드 덧튼 교수는 수십 년간 폭력 가해자를 연구한 끝에, 가해자의 상당수가 일상에서는 사회적으로 기능하는 능력을 온전히 유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들은 직장에서 성실하고, 이웃에게 친절하며, 심지어 유머 감각까지 갖추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 '이중적 기능'이 의도된 위장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구획화(compartmentalization)'라고 부른다. 삶의 각 영역을 완전히 분리된 칸막이처럼 운영하는 심리 기제다. 직장 칸, 이웃 칸, 가족 칸은 평화롭게 유지하면서 폭력 충동은 전혀 다른 칸에 가두어 두는 것이다.
알베르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이미 1990년대 연구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해로운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내면에서 비인간화하는 방식으로 도덕적 자기 제재를 끊어낸다는 점을 입증했다. 즉 가해자 스스로도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기 서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인들이 가해자를 알아채지 못하는 데는 인간의 인지 편향도 한몫한다. 심리학에서 '후광 효과(halo effect)'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한 사람에게서 좋은 특성 하나를 발견하면, 나머지 특성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다.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니 설마 그럴 리가 없다'는 식의 판단이 작동하는 것이다.
미국 코넬대 심리학과 데이비드 피자로 교수 연구팀이 2018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범죄자의 외모나 평소 행동이 '정상적'일수록 범행 가능성을 실제보다 평균 40% 낮게 추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뇌가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과 '안전한 것'을 자동으로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까지 더해진다. 일단 '평범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형성되면, 이후에 보이는 이상한 신호들은 무의식적으로 걸러지거나 재해석된다.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원래 좀 내성적인 사람이잖아'라고 넘겨버리는 것이다.
경찰대 행정학과·치안대학원 범죄학과 한민경 교수가 최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살인 피해자 3명 중 1명은 가해자와 친밀한 관계였다. 낯선 사람에게 당하는 범죄보다, 잘 안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범죄가 훨씬 더 많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이니 괜찮다'는 믿음이 오히려 경계심을 낮추는 역설이 생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친숙함 착각(familiarity illusion)'이라고 설명한다. 누군가를 오래 봤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실제로 안다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함께 밥을 먹고, 인사를 나누고,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 뇌는 '이 사람은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이 신호는 관계의 깊이가 아닌 노출 빈도에 근거한 것이다.
더 나아가 가정폭력 사건의 71.7%가 폭행·상해인 반면, 교제폭력의 경우 스토킹이 25%를 차지한다는 한 교수의 통계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이 더 집요하고 지속적인 형태를 띤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마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폭력적인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믿음 자체를 버리라고 조언한다. 대신 행동 패턴의 변화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통제 욕구, 지나친 집착, 갑작스러운 감정 기복, 타인에 대한 비하 발언의 반복 같은 신호들이 오히려 의미 있는 경고음일 수 있다. 이런 신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성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것들이다.
나와 가까운 누군가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 그 직감을 너무 빨리 합리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엔 좋은 사람이니까'라는 생각이 경고 신호를 덮어버리기 전에, 그 불편한 감정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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