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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았는데, 손이 먼저 노트북을 펼친다. 회사 일이 아니다. 부업 플랫폼 앱을 열고, 블로그 글을 쓰고, 스마트스토어 재고를 확인한다. '이 정도면 됐지' 싶어도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이 가시질 않는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투잡, 쓰리잡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원하는 건 단순히 돈일까. 심리학자들은 고개를 젓는다. 월급만으로 불안한 이 현상, 그 뒤에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심리가 숨어 있다.
미국 심리학회(APA)가 2023년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재정적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중 절반 이상이 객관적으로 생활에 지장이 없는 소득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부족해질 수 있다'는 불안이 행동을 이끌고 있었다.
브래드 클롱츠 미국 캔자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재정적 외상 반응(Financial Trauma Response)'이라고 설명한다. 경기 침체, 대규모 해고, 물가 급등 같은 사회적 충격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뇌는 만성적인 위협 상태로 굳어버린다. 실제 위기가 없어도 경보 시스템이 항상 켜져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이 선택하는 대응 전략이 바로 '추가 수입원 확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에 맞서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려는 심리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감 회복 행동'이라고 부른다.
부업을 하는 모든 사람이 불안에 쫓기는 건 아니다. 로렌 에스크레이스-윙클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부업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접근 동기', 즉 새로운 역량을 키우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해보려는 욕구다. 다른 하나는 '회피 동기', 경제적 불안이나 직장 불만족에서 도망치려는 심리다.
문제는 회피 동기로 시작한 부업은 오히려 번아웃을 앞당긴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회피 동기 그룹이 6개월 후 정서적 소진 점수가 접근 동기 그룹보다 41.3%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불안을 피하려고 더 바쁘게 움직였더니 결국 더 지쳐버린 셈이다.
당신이 퇴근 후 노트북을 여는 이유가 무언가를 향해서인지,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인지 한번 솔직하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소셜미디어는 불안을 증폭시키는 연료가 된다. 레온 페스팅거의 '사회 비교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자아를 평가한다. SNS가 없던 시절, 비교 대상은 동네 이웃이나 직장 동료 몇 명이었다. 지금은 수백만 명의 '월 1000만 원 부업 성공담'이 매일 피드에 쏟아진다.
크리스티나 사마리나 영국 에식스대 경제학과 교수 연구팀은 2021년 SNS 사용 시간이 하루 1시간 늘어날수록 재정적 불안 점수가 12.7% 상승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더 많은 성공 사례를 볼수록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이 강해지는 것이다. 회사 몰래 투잡을 뛰는 방법을 검색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이 비교의 감각에서 시작된다.
퇴근 후 부업을 하든 하지 않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동기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심리상담 현장에서는 '감정 일기'를 추천한다. 부업을 시작하기 전,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딱 한 문장으로 쓰는 것이다. '설레서', '배우고 싶어서'라면 접근 동기다. '무섭다', '뒤처질 것 같다'라면 회피 동기일 가능성이 높다.
클롱츠 교수는 재정적 불안이 심할 때 가장 효과적인 개입 중 하나로 '충분함의 기준 정하기'를 꼽는다. 이 금액이 모이면 충분하다는 구체적인 목표 없이 막연하게 더 벌려고 하면, 아무리 벌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는 강조한다.
오늘 밤 노트북을 열기 전에 잠깐 멈춰보는 건 어떨까. 지금 이 행동이 나를 앞으로 데려가는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인지. 그 질문 하나가 번아웃과 성장의 방향을 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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