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앞에서 말이 안 나와"… 나도 혹시 ‘선택적 함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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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남편 앞에서 말이 안 나와"… 나도 혹시 '선택적 함구증'?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있다. 머릿속에선 문장이 완성된다. 그런데 막상 그 사람 앞에 서면 입이 굳어 버린다. 말이 나오지 않는 게 아니라, 나올 수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 '결혼지옥'에 등장한 한 아내의 사연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렀다. 남편 앞에서만 유독 말문이 막히는 아내에게 붙은 진단명은 '선택적 함구증'.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심리 현상이다.



선택적 함구증이란: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선택적 함구증(Selective Mutism)은 특정 상황이나 특정 인물 앞에서만 말을 하지 못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다른 상황에서는 정상적으로 말할 수 있지만, 특정 맥락에서만 언어 표현이 극도로 억제된다.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성인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불안우울증협회(ADAA)에 따르면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사람의 상당수는 사회불안장애를 함께 갖고 있으며, 증상이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이 침묵이 반항이나 고집, 혹은 무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극심한 불안이 그 안에 있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 즉 배우자나 부모 앞에서 이 증상이 나타날 때 당사자는 물론 상대방도 깊은 상처를 받는다. '왜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라는 오해가 쌓이고,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친밀한 사람 앞에서 더 굳는 이유: 역설적 불안의 심리학


낯선 사람보다 가까운 사람 앞에서 더 말이 막힌다는 것,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를 '평가 불안(Evaluation Anxiety)'으로 설명한다. 가까울수록 그 사람의 반응이 나에게 더 중요하고, 그만큼 실망시키거나 거절당할 위험이 크다고 뇌가 판단하는 것이다. 제니퍼 그로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친밀한 관계에서 감정 표현이 오히려 더 억제되는 현상을 분석하며, 상대방의 기대가 높을수록 자기 검열이 강해진다는 점을 밝혔다.


배우자 관계에서는 이 억압이 더욱 복잡해진다. 결혼 생활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한 비난, 무시, 혹은 갈등이 특정 상황을 위협 신호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뇌의 편도체(Amygdala)가 배우자의 목소리나 표정을 '위험'으로 감지하면 전두엽의 언어 기능이 일시적으로 차단되는데, 이것이 바로 말이 나오지 않는 순간의 실체다.


단순히 성격이 소극적이거나 내성적인 것과는 다르다. 다른 자리에서는 얼마든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유독 배우자 앞에서만 굳어 버린다면, 그 관계 안에 해소되지 않은 불안이 쌓여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침묵 뒤에 숨은 감정: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의 내면


말을 못 하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는데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 에드나 포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인 불안 상태에서는 언어화(Verbalization) 능력 자체가 저하되며, 이는 신체적 증상처럼 실재하는 기능 손상이다.


침묵하는 사람은 종종 '차갑다', '무관심하다', '배려가 없다'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말 한 마디 꺼내는 것이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처럼 두렵다. 2022년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 정신의학연구소가 성인 84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성인의 78.3%가 스스로를 '관계에 실패한 사람'으로 인식한다고 응답했다.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죄책감, 그리고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는 이중의 고통 속에서 이들은 점점 더 자신을 닫아간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무엇보다 '왜 말을 못 하냐'는 질책이 아닌, 안전한 관계의 회복이 먼저 필요하다.



관계 안에서 말문을 여는 법: 작은 안전감부터


선택적 함구증, 특히 성인의 경우 인지행동치료(CBT)가 효과적인 접근법으로 알려져 있다. 핵심은 점진적 노출, 즉 불안한 상황에 천천히, 안전하게 다가가며 뇌가 그 상황을 위협이 아닌 것으로 재학습하게 돕는 방식이다. 말을 못 하는 배우자를 둔 상대방도 치료의 중요한 파트너가 된다.


전문가들은 '왜 말을 안 해?'라는 추궁 대신, 침묵을 수용하는 분위기를 먼저 만들라고 조언한다.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 말하지 않아도 안전하다는 경험이 쌓일 때 비로소 굳어 있던 목소리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당신 곁에 유독 특정 상황에서 말이 없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당신 스스로가 그런 순간을 겪고 있다면 한번쯤 물어봐 주자. '말하기 힘들었지?'라고. 그 한 마디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을 두드리는 시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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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9-08 08: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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