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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상대를 옭아매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배우 황정민을 수년간 스토킹한 여성이 결국 법원으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평판을 인질로 삼았다'는 법원의 표현은 단순한 법률 용어가 아니라, 스토킹 범죄의 본질을 꿰뚫는 말이었다.
이번 사건이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피해자가 유명인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스토킹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을 협박 수단으로 삼고, '평판'을 인질로 통화를 강요했다는 정황은 스토킹 심리의 전형적인 메커니즘을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스토킹은 충동적 감정이 아니다. 도나 반 더 마스트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법심리학과 교수는 2022년 스토킹 가해자 34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이들의 64.7%가 '거절을 수용하지 못하는 인지 왜곡'을 지속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밝혔다. 거절 신호를 처리하는 전두엽 기능이 저하되는 반면, 보상을 기대하는 변연계가 과활성화되는 패턴이었다.
쉽게 말하면, 상대가 '싫다'고 말해도 가해자의 뇌는 그것을 '아직 아니다'로 해석한다. 차단당하거나 무시당할수록 도리어 집착이 강화되는 역설적인 구조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라고 부른다. 때로 상대가 반응을 보이거나 연락이 닿는 순간이 가해자에게 강력한 보상으로 각인되어 집착의 불씨를 살리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이 특히 주목한 것은 '협박의 방식'이었다. 가해자는 황정민의 가족에게 접근해 통화를 이끌어냈고, 피해자의 사회적 평판을 무기 삼아 압박을 가했다. 에밀리 카가와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심리학과 연구팀이 2021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 가해자의 약 41%는 단순한 물리적 접근보다 피해자의 사회적 관계망을 공격하는 '관계적 스토킹(relational stalking)' 전략을 구사한다.
이 전략의 핵심은 통제욕이다. 상대의 삶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공간을 강제로 만들어내려는 욕구가 '나는 당신의 비밀을 안다', '당신의 가족도 나를 안다'는 식의 심리적 포위망으로 표출된다. 가족을 끌어들이는 행동은 피해자에게 극심한 무력감을 유발하기 위해 의도된 것이며, 그 자체가 심리적 폭력의 하나다.
재클린 캠벨 미국 존스홉킨스대 간호대학 교수는 스토킹 피해자 연구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접근하는 경우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발생률이 최대 2.3배 높아진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피해자가 더 이상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연예인 스토킹에는 일반적인 스토킹과 구별되는 심리적 요소가 있다. 바로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다. 시청자는 배우를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십 시간 들여다보며 친밀감을 형성하지만, 그 관계는 철저히 일방적이다. 그럼에도 뇌는 그것을 실제 관계와 유사하게 처리한다.
데이비드 가일 영국 윈체스터대 심리학과 교수는 2019년 연구에서 연예인에게 강한 준사회적 관계를 형성한 팬의 약 16.9%가 '상대도 나를 특별하게 여긴다'는 믿음을 발전시킨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믿음이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지 왜곡과 결합할 때 스토킹으로 이어지는 위험이 급격히 높아진다.
이번 황정민 사건에서 법원이 단순한 '팬의 지나친 열정'이 아닌 명백한 스토킹 범죄로 판단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좋아하는 마음'과 '상대를 통제하려는 욕구'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스토킹 피해 연구들은 공통적으로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이 2023년 스토킹 피해자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피해자의 52.3%는 초기 징후를 '그냥 좋아하는 것 같아서 무시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스토킹은 방치할수록 가해자의 집착이 강화되고 행동이 에스컬레이션되는 경향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반복적인 연락 시도, 일상을 파악하려는 행동, 지인을 통한 우회 접촉이 나타날 때 즉각 경계를 설정하고 기록을 남길 것을 권고한다. 2021년 시행된 스토킹처벌법은 피해자가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회적 선언이기도 하다.
혹시 주변에서, 혹은 나 자신이 반복적인 연락과 접근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면 그 느낌을 흘려보내지 말자. 불편함은 경계의 신호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말고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거나, 경찰청 스토킹 피해 신고(112) 또는 여성긴급전화(1366)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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