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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 후 넷플릭스를 켜다가 문득 멈춘 적이 있는가. 화면을 보고 있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느낌, 손가락은 바쁜데 머릿속은 텅 빈 느낌. 요즘 2030세대 사이에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하는 취미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인라인스케이트, 스도쿠, 자수, 도자기 공방. 60대 사장님도 '이런 적 없었다'며 깜짝 놀랄 만큼 낯선 손님들이 몰려들고 있다. 단순한 유행처럼 보이지만, 심리학은 이 현상에서 전혀 다른 신호를 읽어낸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6년 3월 전국 만 19~4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3%가 최근 1년 사이 '아날로그 취미'에 새로 도전했거나 관심이 생겼다고 답했다. 특히 20대의 응답률이 68.7%로 가장 높았다. 스마트폰과 AI가 모든 것을 대신해주는 시대에, 오히려 손으로 직접 하는 경험에 대한 갈증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유능감, 자율성,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될 때 진정한 만족을 느낀다. 숫자 퍼즐을 풀거나 인라인을 타면서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유능감을 직접 체감하는 것, 그것이 뇌에 강력한 보상 신호를 보낸다.
미국 스탠퍼드대 행동설계연구소 B.J. 포그 박사는 디지털 플랫폼이 설계한 '무한 스크롤'이 뇌의 완성 신호를 차단한다고 지적한다. 콘텐츠는 끝이 없고, 달성감도 없다. 반면 스도쿠 한 판을 완성하거나 인라인으로 한 바퀴를 돌았을 때의 뇌는 분명한 완료 신호를 받는다. 디지털 피로가 쌓인 세대가 아날로그로 향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반응인 셈이다.
현대 심리학이 경고하는 현상 중 하나가 '도파민 내성'이다. 애나 렘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저서에서 소셜미디어, 숏폼 영상, 게임처럼 빠르고 강렬한 자극이 반복되면 뇌의 보상 회로가 점점 무뎌진다고 설명한다. 더 강한 자극이 있어야 같은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극은 많은데 만족은 없는 상태, 즉 '쾌락의 역설'에 빠지게 된다.
반면 아날로그 취미는 느리고 낮은 강도의 자극을 오랜 시간에 걸쳐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도파민이 급격히 솟구치는 대신 서서히, 그리고 안정적으로 분비된다. 렘키 교수는 이를 '도파민 리셋'이라 부르며, 디지털 자극에서 잠시 벗어나 저강도 활동에 몰입하는 것이 뇌의 보상 시스템을 회복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스도쿠가 '핫걸'의 상징으로 불리는 현상도 여기서 비롯된다. 어렵고 느리지만 풀었을 때의 성취감은 짧은 영상 수십 편을 봐도 얻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뇌는 그 차이를 정확하게 안다.
인라인스케이트가 20대 사이에서 재조명받는 것도 단순한 복고 감성이 아니다.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은 신체의 움직임이 곧 정신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아나 아우스틴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균형 감각을 요구하는 신체 활동을 30분 이상 지속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불안 지수가 평균 27% 낮아졌다.
인라인스케이트는 균형을 잡으면서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뇌와 몸이 동시에 몰입해야 하는 활동이다. 이 순간만큼은 걱정도, 비교도, 알림도 끼어들 자리가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 상태를 '플로우(Flow)'라고 부른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 심리학과 교수가 정립한 개념으로, 자신의 능력과 과제 난이도가 적절히 맞아떨어질 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완전한 몰입 상태를 말한다.
60대 공방 사장님들이 '이런 손님들은 처음'이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대가 도자기를 빚고 자수를 놓는 것은 단순히 인스타그램용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손끝에서 완성되어 가는 무언가를 느끼며 그 순간만큼은 진짜로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SNS 세대가 아날로그로 향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소셜미디어는 끊임없는 비교를 유발한다. 타인의 성취, 외모, 여행, 소비가 쉼없이 눈에 들어오면서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향 사회 비교(Upward Social Comparison)'가 반복된다. 레온 페스팅거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심리학자가 제안한 이 개념에 따르면, 자신보다 나은 타인과 비교할수록 자존감이 하락하고 불안이 증가한다.
반면 인라인 광장에서 넘어지거나 스도쿠를 틀리는 건 누가 보지 않는다. 공방에서 삐뚤어진 도자기를 빚어도 괜찮다. 아날로그 취미 공간은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비교가 작동하지 않는 드문 공간이다. 이 안전감이 요즘 세대에게 깊은 쉼표가 된다.
오늘 저녁, 스마트폰을 잠시 서랍 안에 넣어두고 연필로 스도쿠 한 판을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틀려도 괜찮다. 지우개가 있으니까. 그 작은 시도가 오늘 하루 가장 온전하게 내 것이 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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