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인영을 싫어했지?" 기억도 가물한 감정…우리 뇌는 왜 미움을 지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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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왜 서인영을 싫어했지?" 기억도 가물한 감정…우리 뇌는 왜 미움을 지울까


한때 누군가를 정말 싫어했는데, 지금은 왜 싫어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경험, 있지 않은가. 최근 방송에서 백지영이 '왜 서인영을 싫어했는지 이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고백한 장면이 화제가 됐다. 보는 이들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사실 이 장면은 인간의 뇌가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한 꽤 진지한 심리학적 질문을 던진다.


그 미움은 분명 실재했다. 당시엔 이유도 있었고, 감정도 뜨거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면 감정의 흔적만 남고 내용은 사라진다. 도대체 우리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감정은 기억보다 오래 산다: 뇌가 '왜'보다 '얼마나'를 먼저 잊는 이유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감정 잔류 효과(affective residue)'로 설명한다. 어떤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 즉 날짜나 맥락은 잊어도 그 사건이 불러일으킨 감정의 색깔은 훨씬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펠프스 미국 뉴욕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편도체(amygdala)는 강렬한 감정 경험을 기억에 '표시'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 표시가 붙은 이유에 대한 서술적 기억은 해마(hippocampus)가 담당하며 훨씬 빠르게 희미해진다.


쉽게 말하면, 뇌는 '그 사람이 싫다'는 감각은 오래 유지하면서 '왜 싫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일찍 지운다는 뜻이다. 백지영이 경험한 바로 그 상황이다. 서인영에 대한 불편한 감정의 색채는 남아 있었지만, 그것을 정당화하던 스토리는 시간 속에 녹아버린 것이다.


2021년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심리학과 연구팀이 성인 2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참가자들은 부정적인 사건을 기억할 때 사건의 감정적 강도는 정확히 회상했지만, 구체적인 원인과 맥락은 평균 41% 수준으로만 재현했다. 감정이 사실보다 생존하는 것이다.



미움도 '에너지'다: 오래 유지하면 뇌가 지치는 이유


그렇다면 왜 뇌는 굳이 미움의 이유를 잊을까.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부정적 감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인지 자원을 소모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분노나 혐오 같은 감정을 의식적으로 유지할 때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의 에너지 소비가 평상시보다 최대 23% 증가한다. 뇌 입장에서는 '유지 비용이 너무 비싼 감정'인 셈이다.


결국 뇌는 생존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감정의 원인을 천천히 삭제한다. 위협이 사라지고 나면 그 위협의 세부 내용을 굳이 저장해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움의 이유가 흐릿해지는 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설계한 합리적인 '감정 정리' 작업에 가깝다.


그렇다고 감정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특정 사람을 떠올릴 때 왠지 모르게 불편하거나, 근거 없이 경계심이 올라오는 경험이 있다면, 그게 바로 감정 잔류 효과의 흔적이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좀 불편해'라는 감각은 뇌가 만들어낸 보호 신호일 수 있다.



연예인 관계에 더 강렬하게 반응하는 이유: 준사회적 관계의 함정


대중이 연예인 사이의 갈등에 깊이 감정 이입하는 현상도 심리학으로 설명된다. 도널드 호튼과 리처드 볼 미국 시카고대학교 연구팀이 1956년 처음 제안한 '준사회적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 개념이 핵심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만난 적 없는 연예인과 일방적인 친밀감을 형성하고, 그 연예인의 갈등을 마치 내 주변 사람의 갈등처럼 받아들인다.


백지영과 서인영의 관계를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을 오랫동안 미디어로 접해온 대중은 자신도 모르게 어느 편에 '감정적 소속감'을 형성했고, 그 감정이 실제 지인을 향한 감정처럼 강렬하게 작동했다. 이후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거나 갈등 이유가 흐려지면, 대중의 감정도 함께 정리된다.


2019년 영국 리즈대학교 미디어심리학과 에밀리 클레인 박사팀이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7.3%가 특정 연예인에 대해 '만난 적 없지만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답했다. 그 친밀감이 클수록 해당 연예인과 관련된 부정적 정보에도 더 강하게 반응했다.



흐릿해진 미움, 그냥 두어도 괜찮을까: 감정 정리의 심리학


그렇다면 오래된 미움이 이유 없이 남아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심리학자들은 감정의 원인을 억지로 복원하려 하기보다 '그 감정이 지금 내게 필요한가'를 먼저 물어보라고 조언한다. 크리스틴 네프 미국 텍사스대학교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자기자비(self-compassion) 연구에서, 오래된 부정적 감정을 굳이 분석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내는' 연습이 정서 건강에 더 유리하다는 결과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백지영의 '기억 가물가물' 고백은 어쩌면 뇌가 제대로 일을 한 증거일 수도 있다. 이유를 잊었다는 건 그 감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품어온 누군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있다면, 오늘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나는 지금도 이 감정이 필요한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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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9-13 08: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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