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 후 유튜브를 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이 종목 지금 안 사면 후회한다'고 외치는 얼굴들. 구독자 수십만 명을 거느린 그들의 말은 어쩐지 전문가의 조언처럼 들린다.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금융감독원과 다수 매체 보도에 따르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활동하는 이른바 '핀플루언서(금융+인플루언서)'의 종목 추천을 믿었다가 손실을 본 투자자들의 피해 사례가 꾸준히 늘고 있다. 왜 우리는 알면서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걸까.
로버트 치알디니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사람들이 '권위'처럼 보이는 대상에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경향을 '권위 편향(Authority Bias)'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권위'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학위나 직함이 권위를 증명했지만, 지금은 팔로워 수와 조회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구독자 50만 명의 유튜버가 말하는 주식 정보는, 실제로는 자격증 없는 개인 의견임에도 불구하고 시청자의 뇌는 그것을 '전문가의 분석'에 가깝게 처리한다. 이를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고 부른다. 미디어 심리학자 도널드 호튼과 리처드 월 미국 시카고대 연구팀이 1956년 처음 제안한 개념으로, 일방적으로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인물에게 친밀감과 신뢰를 형성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당신이 매일 같은 유튜버의 영상을 보고, 그의 말투와 취향을 알고, 댓글로 소통까지 했다면 뇌는 그를 '아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는 사람의 말을 낯선 전문가의 말보다 훨씬 쉽게 신뢰한다.
핀플루언서들이 즐겨 쓰는 표현들이 있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 '이미 많이 올랐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저만 믿으세요'. 이 문장들은 심리학적으로 정밀하게 설계된 언어다.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같은 크기의 이익을 얻는 기쁨보다 손실을 입는 고통을 약 2배 더 강하게 느낀다. '손실 회피(Loss Aversion)'로 불리는 이 현상이 핀플루언서의 말에 불안을 증폭시키는 연료가 된다.
여기에 'FOMO(Fear Of Missing Out)', 즉 나만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해진다. 앤드루 프르지빌스키 영국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 교수의 2013년 연구에서 성인 2000여 명 중 56%가 SNS를 통해 타인의 성공적인 투자 소식을 접할 때 상당한 불안감을 경험한다고 응답했다. 남들이 다 수익을 냈다는 소식이 들릴수록 냉정한 판단보다 충동적 결정이 앞서게 되는 것이다.
핀플루언서들이 댓글창에 '나도 수익 났어요', '덕분에 500만 원 벌었습니다' 같은 후기를 노출시키는 것도 이 심리를 이용한 전략이다. 다수가 선택한 것이 옳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효과로, 개인의 비판적 사고를 흐리게 한다.
핀플루언서 문제의 또 다른 심각성은 구조적인 이해충돌에 있다. 국제증권감독기구(IOSCO)의 2023년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핀플루언서의 약 39%가 특정 종목이나 금융상품을 협찬받고 추천하면서도 그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다. 시청자는 순수한 투자 의견을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광고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는 '투명성 착각(Illusion of Transparency)'을 이용한 것이다. 유튜버가 직접 카메라 앞에 앉아 말하는 형식은 텍스트 광고보다 훨씬 진솔하고 사적인 인상을 준다. 이 친밀한 포맷이 시청자로 하여금 광고임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핀플루언서의 종목 추천 행위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공백 상태이며, 해외에서는 형사처벌까지 도입한 국가들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심리적 함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행동경제학에서 제안하는 방법 중 하나는 '24시간 대기 규칙'이다. 영상을 보고 투자 충동이 생겼다면 바로 실행하지 말고 하루를 기다리는 것이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같은 정보가 전혀 다르게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리처드 탈러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처럼 충동적 결정을 늦추는 장치를 만드는 것이 장기적인 재무 건강에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해당 유튜버가 추천하는 종목을 자신이 직접 보유하고 있는지, 협찬 여부가 공개되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과 '믿을 수 있는 정보'는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된다. 오늘 저녁 익숙한 얼굴의 유튜버가 '지금 사야 한다'고 외칠 때, 잠깐 영상을 멈추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이 사람이 진짜 나의 수익을 원하고 있을까?'라고.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3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