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갑자기 DM이 왔다.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열었더니 '상견례 얘기를 하고 싶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그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어도 믿고 싶었을 것이다.
최근 배우 이동욱을 사칭한 사기범이 팬 A씨에게 접근해 8개월간 얼굴 한 번 못 보게 하면서 적금까지 털어간 사건이 보도됐다. 피해자는 보조출연자로 활동하며 연기를 공부해온 30대 여성이었다. 어리석어서 당한 게 아니다. 심리학은 이 사건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좋아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받을 때 뇌에서는 도파민이 폭발적으로 분비된다. 미국 럿거스대 헬렌 피셔 인류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하거나 강하게 끌리는 대상을 떠올릴 때 뇌의 복측피개영역이 활성화되고 이때 분비된 도파민이 전두엽 기능을 일시적으로 억제한다. 전두엽은 비판적 사고와 위험 판단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즉, 좋아하는 연예인이 연락해왔다는 믿음이 생기는 순간 뇌는 이미 '확인 모드'가 아니라 '수용 모드'로 전환된다. 의심해야 할 신호가 들어와도 그것을 부정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라 부른다. 원하는 결론에 맞게 증거를 해석하려는 무의식적 경향이다.
A씨가 8개월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하면서도 관계를 이어간 것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믿고 싶다는 감정이 판단력을 지속적으로 압도한 결과다.
연예인 사칭 사기가 유독 팬에게 잘 먹히는 이유가 있다. 심리학에서 '파라소셜 관계(parasocial relationship)'라고 부르는 현상 때문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수 엔더스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1년 성인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팬들은 연예인과 실제 관계를 맺지 않았음에도 그 사람의 목소리, 표정, 말투를 내면화해 '오랜 친구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오랫동안 이동욱의 인터뷰, 드라마, SNS를 지켜본 A씨에게 그는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 사람이 어떻게 말하는지 안다'는 친숙감이 쌓인 상태에서 그 말투와 비슷한 메시지가 오면 뇌는 자동으로 '맞다'고 판단한다. 사칭범은 바로 이 틈을 노린다.
사칭범이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일이 커진다'며 계좌 이체를 요구했을 때, 피해자는 이 말이 그 사람다운 신중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파라소셜 관계로 쌓인 '가짜 친밀감'이 경보 신호를 무력화한 것이다.
8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피해자가 관계를 끊지 못한 데는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가 작용한다. 미국 코넬대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 교수의 연구에서 밝혀졌듯, 사람들은 이미 투자한 시간과 돈이 클수록 그것을 포기하기 더 어려워한다. 8개월을 믿어온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심리적으로 매우 고통스럽다.
사기범들은 이 원리를 본능적으로 활용한다. 처음에는 감정적 교류만 주고받다가, 신뢰가 쌓인 뒤에는 작은 부탁을 하나씩 얹는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성식 교수가 2022년 발표한 로맨스 스캠 피해자 분석 연구에서도 피해자의 74%가 첫 번째 금전 요구에 응한 뒤 평균 3.2회 추가로 응했고, 그 이유로 '지금까지의 관계가 아까워서'를 가장 많이 꼽았다.
결국 사기의 구조는 교묘하다. 상대를 속이는 게 아니라, 피해자 스스로 믿고 싶게 만들고, 빠져나오지 못하게 묶어두는 방식이다.
이런 기사를 읽으며 '나는 저런 사기 안 당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심리학은 그 자신감 자체가 위험하다고 말한다. 미국 듀크대 댄 애리얼리 행동경제학과 교수는 저서에서 '사람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믿는 순간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지적했다. 강한 감정, 특히 동경과 사랑은 누구의 판단력도 흔들 수 있다.
피해자를 탓하는 시선도 경계해야 한다. '왜 그걸 믿었냐'는 질문은 심리학적으로 옳지 않다. 사기범은 전문적으로 인간의 감정 취약성을 이용하도록 훈련된 사람이다. 피해는 피해자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사기범의 치밀한 심리 조작에서 비롯된다.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연락이 온다면, 설레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딱 한 가지만 확인해보자. 공식 인증 계정인지 여부다. 그리고 돈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그게 누구든, 그 관계는 일단 멈춰야 한다. 당신의 감정이 소중한 만큼, 그 감정을 지키는 것도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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