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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연예인이 몇 년 뒤 미소를 가득 담은 프로필 사진을 올리며 '예쁘게 봐주세요'라고 말한다. 세상은 새 출발을 응원하고, 카메라 플래시는 다시 터진다. 그 순간, 피해자는 어디에 있을까.
전 아이돌 그룹 르세라핌 출신 김가람이 배우로 복귀를 준비하며 최근 새 프로필 사진을 공개했다.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인정돼 팀에서 불명예 탈퇴한 지 약 4년 만이다. 가해자의 화려한 '재기 서사'가 미디어를 채우는 동안, 심리학은 이 장면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읽어낸다.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2차 피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은 뒤 사회적으로 복귀하거나 오히려 주목을 받게 될 때,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고통이 지워지거나 무효화되는 듯한 감각을 느낀다. 제니퍼 프리드 미국 오리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2019년 연구에서 이 경험을 '제도적 배신(institutional betrayal)'의 연장으로 정의하며, 피해자가 사회 구조 자체로부터 다시 한번 상처를 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학교폭력 피해자의 심리를 추적한 국내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22년 피해 경험자 8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61.3%가 '가해자가 주변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우울감이 재발했다'고 답했다. 특히 가해자가 미디어에 노출되거나 대중의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증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 반응은 의지나 멘탈의 문제가 아니다. 트라우마 기억은 뇌의 편도체에 각인되어, 관련 자극이 등장할 때마다 당시의 공포 반응을 그대로 재활성화시킨다. 가해자의 얼굴이 화면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는 하나의 트리거가 되는 것이다.
가해자가 몇 년의 공백 뒤 미소를 띠고 새 출발을 선언할 수 있는 심리적 배경에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 기제가 작동한다. 알베르트 반두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심리학과 명예교수가 정립한 이 개념은, 인간이 자신의 해로운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최소화하여 내면의 죄책감을 낮추는 심리적 과정을 설명한다. '그때는 어렸으니까', '철없던 과거일 뿐', '나도 많이 반성했다'는 자기 서사가 바로 이 기제의 작동 방식이다.
문제는 이 자기 서사가 피해자의 경험과 완전히 동떨어진 채 구성된다는 점이다. 가해자가 '성장'을 선언하는 동안, 피해자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미국 심리학회(APA)가 2021년 발표한 학교폭력 장기 추적 연구에 따르면, 피해자의 약 40%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경험하며, 이 수치는 가해자가 처벌 없이 사회에 복귀한 경우 52%까지 높아졌다.
가해자의 '자숙 기간'과 피해자의 '회복 기간'은 결코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 한쪽이 새 프로필 사진을 찍는 동안, 다른 한쪽은 그 사진을 뉴스 피드에서 마주친다.
미디어가 가해자의 복귀를 '성장 스토리'로 포장할 때, 대중의 심리는 쉽게 설득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서사 수송(narrative transportation)' 효과라고 부른다. 멜라니 그린 미국 버팔로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매력적인 이야기 안으로 '빨려 들어갈수록' 비판적 판단 능력이 낮아지고 주인공에 대한 공감이 높아진다. 반성하는 청년,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 드라마는 대중이 가장 몰입하기 쉬운 서사 구조다.
여기에 '공감 편향(empathy bias)'도 더해진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사람, 지금 말을 하는 사람에게 감정을 이입하기 쉽다. 피해자는 침묵 속에 있고, 가해자는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이 구조적 비대칭이 대중의 감정을 왜곡시킨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이 더 많은 공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해자의 복귀 소식 앞에서 잠깐이라도 멈춰야 하는 이유가 생긴다. '그래, 사람은 변하지'라고 넘기기 전에, '피해자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를 한 번쯤 묻는 것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회복을 연구해온 주디스 허먼 미국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명예교수는 저서 '트라우마와 회복'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복의 첫 번째 조건은 안전이고, 두 번째 조건은 기억과 애도이며, 세 번째 조건은 연결이다.' 그런데 가해자의 복귀 서사가 미디어를 뒤덮을 때, 피해자는 이 세 가지 조건 모두를 위협받는다. 나의 고통이 사소한 것으로 처리되는 느낌, 세상이 가해자 편이라는 느낌,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느낌.
피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제 잊어라'가 아니라 '그 일은 실제로 있었고, 당신은 잘못이 없다'는 사회적 인정이다. 만약 주변에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가해자의 복귀 소식이 들릴 때 먼저 연락해 보는 것은 어떨까. '뉴스 봤어. 많이 힘들겠다. 내가 여기 있어'라는 말 한마디가, 어떤 심리 치료보다 먼저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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