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새벽 두 시, 잠이 안 와서 괜히 AI 챗봇에 생년월일을 입력해 본 적 있는가. 처음엔 그냥 심심해서였다. 그런데 결과를 읽다 보니 어딘가 뜨끔하고, 화면을 캡처해 저장까지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AI 점술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사주와 타로를 넘어, 수년간의 넷플릭스 시청 기록이나 유튜브 알고리즘을 AI에 붙여 넣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10년 뒤 미래는 어떨지' 묻는 것이 하나의 놀이가 됐다. 단순한 유행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꽤 복잡한 심리가 숨어 있다.
인간의 뇌는 불확실한 상황을 견디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케이티 밀크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행동경제학 교수는 사람이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수록 '패턴 찾기'에 집착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점술이 수천 년간 사라지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6년 전국 만 13~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점술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점술 콘텐츠를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0대가 71.0%로 가장 높았다. 취업, 연애,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클 나이대다.
흥미로운 점은 AI 점술이 기존 사주나 타로와 다른 방식으로 매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분석했다'는 포장이 붙으면 같은 내용도 더 '과학적'으로 느껴진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권위 편향(authority bias)'이라고 부르는데, 신뢰할 수 있어 보이는 출처의 말을 더 잘 믿게 되는 인지적 경향이다.
AI 점술 결과를 읽으면서 '이게 꼭 나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AI가 당신을 정확히 분석해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심리학에는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모호하고 일반적인 진술을 자신만을 정확히 묘사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현상이다.
폴 밀 미국 미네소타대 심리학과 교수가 1956년 처음 명명한 이 효과는 오늘날 AI 시대에도 고스란히 작동한다. '당신은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내면에 상처를 숨기고 있다', '가끔은 충동적으로 행동하지만 대체로 신중한 편이다' 같은 문장은 사실 대부분의 사람에게 해당된다. 그런데 AI가 말하면 왜인지 더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여기에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까지 더해진다. 결과 중 맞는 내용은 기억하고 맞지 않는 내용은 슬쩍 넘어가는 경향 덕분에, 결국 'AI가 나를 꿰뚫어봤다'는 인상만 남게 된다.
그렇다고 AI 점술에 빠지는 심리가 단순히 '쉽게 속는 것'만은 아니다. 크리스틴 스완슨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심리학과 연구원은 사람들이 점술을 찾는 주요 동기 중 하나가 자기 이해에 대한 욕구라고 밝혔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 선택은 옳은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은 근본적인 필요가 점술 소비를 이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시청 기록을 AI에 넣는 행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반복해서 보는지, 어떤 장르와 인물에 끌리는지는 분명 자기 이해의 단서가 된다. 다만 문제는 AI가 그 데이터를 '의미 있는 통찰'로 해석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계적 패턴 매칭에 가깝다는 사실을 이용자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우리는 AI에게 점을 보는 게 아니라, AI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심리 상담에서 치료사가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내담자 자신의 말을 다시 돌려줌으로써 스스로를 이해하게 돕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AI 점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재미로, 가볍게, 하나의 놀이로 즐기는 수준이라면 심리적으로 큰 해가 없다. 오히려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다만 AI 점술 결과를 중요한 인생 결정의 근거로 삼거나, 결과가 나쁘게 나왔을 때 과도하게 불안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권준수 서울대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점술 의존이 심해질 경우 자율성과 자기효능감이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말해주는 대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면,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밤 AI 점술이 궁금해진다면, 결과를 보기 전에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나는 지금 무엇이 불안해서 이걸 찾고 있지?' 그 질문 자체가, 어떤 AI 사주보다 당신을 더 잘 이해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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