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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그룹 프로미스나인 출신 노지선이 오랜 침묵을 깨고 아이돌 활동 당시 겪었던 일들을 공개했다. 조작된 1위, 정산 없는 카드 돌려막기, 신체 부위를 부각하는 영상 편집까지. 그 폭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지만, 많은 이들이 더 궁금해한 건 다른 질문이었다. '왜 이제야?'
참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수년간 불합리함을 겪으면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데는 단순한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심리학이 설명하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미국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1967년 실험을 통해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개념을 제시했다. 반복적으로 피할 수 없는 불쾌한 상황에 노출된 존재는, 나중에 탈출 가능한 환경이 주어져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은 이 구조와 닮아 있다. 어린 나이부터 수년간 '회사의 결정'에 복종해온 이들은, 반복된 경험 속에서 '내가 뭘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믿음을 내면화한다. 노지선이 활동 중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것은 의지 부족이 아니라, 학습된 무기력이 작동한 결과일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한국심리학회 연구에 따르면, 위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문화에 장기간 노출된 구성원일수록 부당한 처우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경향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아이돌 산업에는 독특한 심리적 역학이 존재한다. 데뷔 기회 자체가 '특혜'처럼 여겨지는 구조 속에서, 피해자는 착취를 착취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내가 감사해야 할 상황'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의 한 형태로 설명한다.
스탠퍼드대학교의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진행한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역할과 권력이 얼마나 빠르게 사람의 인식을 바꾸는지 보여줬다. 권력을 가진 쪽이 설정한 규칙은 그 자체로 '정상'처럼 보이기 시작하고, 피해자는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게 된다.
노지선이 공개한 내용 중 신체 부위를 확대해 슬로모션으로 편집한 영상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에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이의 제기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변 모두가 정상이라고 하는 상황에서 혼자 '이건 이상하다'고 말하기란 심리적으로 극히 어렵다.
침묵에는 이유가 있다. 심리학자 제니퍼 프리드 미국 오리건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배신 트라우마 이론(betrayal trauma theory)'을 통해, 의존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입은 경우 피해자가 그 사실을 인식조차 억압한다고 설명했다.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운다는 것이다.
아이돌로서의 커리어, 팀원과의 관계, 팬들의 시선, 업계에서의 미래.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는 폭로를 어렵게 만든다. 더구나 연예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폭로 이후 '피해자다움'을 검증받아야 하는 2차 고통이 기다린다.
노지선의 폭로가 이루어진 지금도 일부 댓글에서는 '왜 이제야 말하냐'는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이 질문은 피해자가 아닌 피해를 가능하게 만든 구조를 향해야 한다. 침묵이 길었던 것은 피해자의 약함이 아니라, 그만큼 침묵을 강요한 힘이 강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피해자는 언제 말할 수 있게 될까. 하버드대학교 에이미 에드먼드슨 경영대학원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결정적 조건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다. 보복이나 배제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느낄 때 비로소 억눌린 말들이 나온다.
노지선의 경우, 그룹 활동이 끝난 시점, 소속사와의 관계가 정리된 시점이 폭로의 시점과 맞물린다. 이는 나약함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말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전략적 침묵'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이런 폭로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왜 이제야'라는 질문 대신, '이제라도 말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다음 피해자의 침묵을 조금 더 짧게 만들 수 있다. 혹시 주변에 오래 참아온 누군가가 있다면, 먼저 물어봐 주는 것은 어떨까. '그때 많이 힘들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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