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뉴스를 보다 보면 가끔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 있다.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 법정에서는 '술에 취해 기억이 없다'거나 '정신 질환이 있어 심신이 미약했다'고 주장하는 피의자의 얼굴을 볼 때다. 직관적으로 '저건 꾀병 아닌가?' 싶은 의심이 들지만, 막상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막막하다.
인천 쇼핑몰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가 대표적이다. 2004년 공인중개사 살인미수 당시 범행 사흘 전부터 피해자를 미행하고 흉기를 양말 속에 숨겨 준비했던 인물이, 법정에서는 정신 질환을 이유로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심리학은 이 불쾌한 패턴에 어떤 이름을 붙이고 있을까.
심리학과 정신의학에서 심신 미약은 '범행 당시 자신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 혹은 그 판단에 따라 행동을 통제할 능력이 현저히 손상된 상태'를 말한다. 문제는 계획성이다. 스티븐 포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심리학과 교수가 2009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반사회적 성격 장애 진단을 받은 피의자 가운데 상당수가 법정에서 유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신 질환 증상을 과장하거나 모방하는 행동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를 '말린저링(malingering)', 즉 꾀병이라고 불렀다.
범행 전 피해자를 며칠에 걸쳐 추적하고, 흉기를 특정 장소에 숨기고, 목격자가 없는 시간대를 골라 범행 장소를 정하는 일련의 행동은 전두엽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두엽은 충동 조절, 미래 계획, 결과 예측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박지선 숙명여자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계획된 범행과 심신 미약은 논리적으로 함께 성립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계획 자체가 이미 인지 기능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정신 질환 주장이 거짓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정신 질환을 앓으면서 범행에 이른 사례도 있다. 그러나 범행 직전까지는 사회생활을 하고, 범행 직후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행동을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도주와 증거 인멸은 그 자체로 '나쁜 일을 했다는 인식'이 있었음을 방증한다.
심신 미약 주장과 함께 법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카드가 '만취'다. 술을 마셨기 때문에 판단 능력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알코올 심리학 연구는 이 논리에 선명한 반기를 든다. 미국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NIAAA)에 따르면 알코올은 억제력을 낮추고 충동성을 높이지만, 기존에 없던 폭력적 의도를 새로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쉽게 말해, 술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강화하는 촉매일 뿐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물질이 아니다.
2013년 미국 심리학 저널 '익스페리멘털 앤드 클리니컬 사이코파마콜로지(Experimental and Clinical Psychopharmacology)'에 실린 연구에서는 음주 후에도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의식하는 '사회적 관찰 능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됐다. 피의자가 범행 후 현장을 피해 도망쳤다면 그것이 바로 이 능력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변명에 흔들리는 이유가 있다.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귀인 오류(Attribution Error)'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나쁜 행동은 상황 탓으로, 타인의 나쁜 행동은 성격 탓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다. 피의자는 이 본능을 영리하게 역이용한다. '내가 나쁜 게 아니라 술 때문에, 병 때문에 그랬다'는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법정에서 피의자가 눈물을 흘리거나 떨리는 목소리로 진술할 때, 방청석과 배심원단이 흔들리는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폴 에크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수십 년 연구를 통해 인간이 슬픔과 공포의 비언어적 신호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도록 진화했음을 밝혔다. 문제는 이 공감 반응이 진짜 고통에도, 연출된 고통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특히 반사회적 성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타인의 공감 반응을 읽고 그것을 활용하는 데 능숙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포터 교수팀의 후속 연구에서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개인일수록 면접관이 원하는 답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유의미하게 높았다. 범행은 치밀하게, 법정에서는 무너진 사람처럼 보이는 이중적 모습이 우연이 아닌 셈이다.
결국 우리가 속는 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공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감은 맥락과 함께 작동해야 한다. 범행의 계획성, 범행 전후 행동의 일관성, 진술의 모순을 종합적으로 살피는 것이 감정적 반응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현행 형법 제10조는 심신 미약자에 대한 형 감경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법정에서 실제 감정 능력을 정확히 측정하는 도구와 절차가 충분히 정교하지 않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법원 감정에서 범행 당시의 상태를 재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피의자가 감정 시점에서 보이는 상태와 범행 당시 상태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피의자가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분노만으로는 제도가 바뀌지 않는다. 계획 범죄와 심신 미약이 논리적으로 병존하기 어렵다는 사실, 알코올이 의도를 지우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 그리고 공감 반응이 연출에도 작동한다는 심리학적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시민이 늘어날 때, 법정 안팎의 논의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오늘 이 기사를 주변 사람과 나눠보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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