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스마트폰 화면 캡처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시대다. 경찰 수사 결과, 온라인에서 파다하게 퍼졌던 배우 김수현과 故김새론의 카카오톡 대화는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대화 상대는 전혀 다른 연예인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잠깐 멈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조작된 증거를 아무 의심 없이 믿었을까. 그리고 왜 누군가는 그런 가짜 증거를 만들어 유포하는 걸까. 심리학은 이 불편한 질문에 꽤 명확한 답을 내놓는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훨씬 쉽게 속는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란 이미 자신이 믿고 싶은 방향의 정보만 골라 받아들이는 인지적 오류다. 레이몬드 닉커슨 미국 터프츠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1998년 발표한 연구에서 확증 편향이 인간의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인지 왜곡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
카카오톡 대화록처럼 '스크린샷'이라는 시각적 증거는 뇌에 특히 강한 인상을 남긴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제레미 베일렌슨 교수 연구팀이 2021년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참가자의 68%는 시각적 형태로 제시된 허위 정보를 텍스트 형태보다 훨씬 더 사실로 믿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이미 부정적인 감정이 형성된 대상에 관한 정보일수록 사람들은 검증 없이 수용한다. '저 사람은 그럴 것 같아'라는 선입견이 먼저 자리 잡으면, 가짜 증거도 진짜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작된 증거를 만들어 유포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사이버 어그레션(cyber aggression)'의 고도화된 형태로 본다. 캐나다 퀸스대 심리학과 크리스틴 벡터 교수는 온라인 허위 정보 유포자의 심리 분석 연구에서, 이들의 행동 동기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통제감 획득'과 '권력 행사 욕구'에 있다고 밝혔다.
유명인은 이러한 공격의 특히 매력적인 표적이 된다. 많은 사람이 주목하기 때문에 조작 정보의 파급력이 크고, 그만큼 공격자가 얻는 심리적 보상도 커진다. 실제로 미국 MIT 미디어랩이 2018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에서, 소셜미디어 상의 허위 정보는 사실 정보보다 6배 더 빠르게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세상을 떠난 고인을 허위 조작의 도구로 삼은 이번 사건은 더욱 충격적이다. 반박도, 해명도 할 수 없는 사람을 조작의 매개로 이용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비대칭 권력 구조'를 이용한 공격으로, 피해자의 방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는 점에서 더욱 잔인하다.
조작된 정보가 퍼지는 데는 '군중 심리(mob mentality)'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영국 서식스대 심리학과 스티브 라이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집단 안에서 사람들은 개인일 때보다 훨씬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대한 책임감도 희석된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집단 전체의 공격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 현상이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익명성이 보장되고, 행동의 즉각적인 결과를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는 수만 건의 악플과 공유가 조작된 정보를 기정사실로 굳혀 버리는 과정, 심리학에서는 이를 '캐스케이드 효과(cascade effect)'라고 부른다.
이번 사건은 디지털 시대에 한 개인이 얼마나 취약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방식으로 가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사실 이 문제의 해법은 거창하지 않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순택 교수는 온라인 정보 리터러시와 관련해 '한 템포 멈추기(pause effect)'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충격적이거나 자극적인 정보일수록 즉각 반응하기 전에 '이게 정말 사실일까'라는 질문을 한 번 더 던지는 습관이 허위 정보의 확산을 크게 줄인다는 것이다.
카카오톡 대화 캡처, SNS 폭로글, 익명의 제보. 이 모든 것은 편집되고 조작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증거'가 정말 증거인지 한 번만 더 생각해보는 것, 그리고 공유 버튼 위에 올려진 손가락을 잠깐 거두는 것. 그 작은 선택이 한 사람의 삶을 지킬 수 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3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