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퇴근하면 동료들과 삼겹살 한 판 구워 먹고 2차까지 이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6시만 되면 각자 이어폰 꽂고 뿔뿔이 흩어진다. 헬스장으로, 필라테스 학원으로, 혹은 그냥 집으로.
농림축산식품부의 '2025 국내외 외식트렌드' 조사에서도 이 변화가 수치로 확인됐다. 저녁 회식이 눈에 띄게 줄면서 주류 출고량까지 감소했다. 직장인의 밤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데, 과연 이 변화는 우리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야근 후 고된 몸을 이끌고 참석했던 회식이 줄었다는 소식에 처음엔 모두가 반겼다. 강요된 술자리 대신 나만의 저녁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막상 홀로 보내는 밤이 길어지자 묘한 감정이 스며든다.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건가' 하는 알 수 없는 허전함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소속감 욕구(need to belong)'로 설명한다. 로이 바우마이스터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간은 집단에 소속되고 싶은 기본적인 욕구를 지닌다고 말했다.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외로움, 무의미감, 심리적 불안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회식은 분명 불편한 자리였지만, 동시에 '나는 이 집단의 일원'이라는 신호를 꾸준히 보내주는 장치이기도 했다. 그 장치가 사라지면서 일부 직장인들은 연결감의 빈자리를 느끼기 시작하고 있다.
퇴근 후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고, 온라인 강의를 듣고,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삶은 분명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규칙적인 신체 활동이 우울감을 낮추고 자기효능감을 높인다는 연구는 수없이 많다. 2023년 하버드 의대 카림 칸 박사팀이 성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주 3회 이상 운동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 증상이 43% 낮게 나타났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자기계발로 채운 시간이 아무리 알차도 그것이 타인과의 연결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실험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인간이 진정한 소속감을 느끼려면 공유된 경험, 즉 같은 공간에서 함께 웃고 먹고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혼자 완성하는 루틴은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주지만, 타인과의 온기를 채워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연결감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내향형 기질을 가진 사람은 혼자 있는 시간에서 에너지를 회복하며 충분한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 중요한 건 '내가 진짜 원해서 혼자인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혼자가 됐는지'를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고독을 두 종류로 나눈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solitude)과 원치 않는데 혼자가 된 외로움(loneliness)이다. 전자는 창의성과 자기성찰을 높여주는 긍정적 상태지만, 후자는 만성 스트레스와 같은 수준으로 신체 건강까지 해친다. 존 카치오포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만성적 외로움은 혈압을 높이고 면역 기능을 약화시키며 수명을 평균 15년 단축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회식 문화가 무너지고 개인 시간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이 두 가지가 뒤섞이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자유로운 저녁이 반가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 먼저 연락해주기를 기다리다 결국 아무도 연락하지 않은 밤이 쌓인다. 일부 직장인들은 '내가 먼저 연락하기엔 어색하다'는 감정의 장벽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이는 '비용-보상 이론(Social Exchange Theory)'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연락을 취했다가 상대가 냉담하게 반응하면 감수해야 할 심리적 비용이 크다고 느낄수록 사람들은 행동을 주저하게 된다. 결국 모두가 기다리기만 하는 사이 연결은 점점 멀어진다.
그렇다고 억지로 회식 문화를 되살릴 필요는 없다. 심리학은 훨씬 가벼운 처방을 제안한다. 로빈 던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대단한 이벤트보다 소소한 접촉의 빈도가 더 중요하다. 짧은 안부 문자 한 통, 점심을 같이 먹자는 가벼운 제안, 퇴근길 잠깐 걸으며 나누는 10분짜리 대화도 충분히 연결감을 채워준다.
회식 없는 저녁은 분명 더 자유롭고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다. 단, 그 자유가 비자발적 고독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틈틈이 내 연결의 온도를 점검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 퇴근길, 한동안 연락 못 했던 동료에게 '요즘 어때요?' 한 마디 던져보는 건 어떨까. 관계는 언제나 작은 말 한마디에서 다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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