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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결승선이 눈앞에 보인다. 다리는 이미 한계를 넘었고, 가슴은 터질 것 같다. 그런데도 발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만 더.' 이 한 마디가 발을 움직인다.
지난 뉴욕 마라톤에서 20대 여성 참가자가 완주 직후 사망했다. 그녀가 아버지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는 '아빠, 몸이 아파'였다. 국내에서도 지난 10월 서울 마라톤에서 참가자가 목숨을 잃었다. 왜 사람들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걸까.
심리학에는 '목표 고착(goal fixat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 가지 목표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주변의 경고 신호를 무의식적으로 차단하는 현상이다. 애덤 갈린스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12년 성인 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에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신체 이상 신호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36%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라톤은 특히 이 효과가 강하게 나타나는 종목이다. 출발 전부터 수개월간 훈련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만큼, 완주라는 목표는 단순한 스포츠 목표를 넘어 자기 정체성과 결합된다. '나는 완주하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이 형성되면, 중도 포기는 단순한 기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경험처럼 느껴진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기 개념 위협(self-concept threat)'이라 부른다. 완주를 포기하는 순간 느끼는 심리적 고통이 신체적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뇌는 이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 몸의 경고를 의식 밖으로 밀어낸다.
마라톤을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고통이 사라지고 황홀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소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 불리는 이 현상은 오랫동안 엔도르핀 분비 때문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는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의 활성화가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요하네스 프리스터 독일 울름대 신경과학과 교수팀이 2021년 발표한 연구에서, 장시간 유산소 운동은 뇌의 통증 처리 회로를 억제하고 기분을 고양시키는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급격히 늘린다는 것이 확인됐다.
문제는 이 메커니즘이 위험 신호마저 차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거나 호흡이 가빠져도, 뇌가 이를 고통으로 인식하지 못하면 위기 상황임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마라톤 완주 후 쓰러지는 사례 대부분이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에 발생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극도의 집중 상태와 아드레날린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버티다가, 긴장이 풀리는 순간 신체 붕괴가 한꺼번에 찾아오는 것이다.
결국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몸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기도 하다. 쾌감이 극대화될수록 경고등은 더 흐릿해진다.
심리학적으로 마라톤 완주 집착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다. 이미 투자한 시간, 돈, 노력이 아까워서 멈추지 못하는 심리다. 할 아르케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미 투자한 비용이 클수록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훈련에 쏟아부은 수백 시간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그냥 멈추자'는 이성적 판단은 감정 앞에서 힘을 잃는다.
여기에 주변의 시선도 작용한다. 수천 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대회에서, 혹은 SNS에 훈련 과정을 공유해온 사람이라면 중도 포기는 단순한 선택이 아닌 사회적 실패처럼 느껴진다. 체면과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는 '자기 표현 동기(self-presentation motivation)'가 더해지면서, 몸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어려워진다.
전문가들은 이를 '완주 터널 비전'이라 부른다. 목표, 매몰 비용, 사회적 시선이 겹치며 오직 결승선만 보이고, 나머지는 시야에서 사라지는 상태다.
심리학자들은 '자기 자비(self-compassion)' 훈련이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크리스틴 네프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교육심리학과 교수는 자기 자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데 덜 위협을 느끼고, 위험한 상황에서 더 유연하게 멈출 수 있다고 2015년 연구에서 밝혔다. 멈추는 것을 실패가 아니라 현명한 판단으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다면, 출발 전 자신에게 미리 '허가'를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몸이 위험 신호를 보내면 멈춰도 된다'는 자기 계약을 훈련 단계에서 명확히 해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또 함께 뛰는 파트너나 의료 자원봉사자에게 사전에 '이상해 보이면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사고를 예방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조언한다. 달리기의 진짜 용기는 멈출 줄 아는 것에도 있다. 오늘 운동화 끈을 묶기 전, 나에게 '괜찮으면 멈춰도 돼'라고 한 번만 말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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