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

[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술을 끊고 싶었다. 도박도 그만두고 싶었다. 스스로 다짐도 해봤고, 의지도 불태워봤다. 그런데 왜 번번이 실패했을까. 혼자 버텨내는 것만이 중독을 이기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근 지축종합사회복지관이 개최한 정신건강 사례관리 컨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한 것이 있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사회적 소속감 충족이 먼저'라는 것이다. 의지나 절제보다 '연결'이 더 강력한 치료제라는 주장, 심리학은 어떻게 설명할까.
중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의지력'을 떠올린다. 더 독하게 마음먹으면 된다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심리학계는 오래전부터 이 믿음에 의문을 제기해왔다. 중독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심리학자 브루스 알렉산더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쥐 공원 실험'이 그 출발점이다.
알렉산더 교수는 1970년대에 흥미로운 실험을 설계했다. 고립된 우리에 혼자 가둔 쥐와, 동료들과 함께 넓은 공간에서 놀 수 있는 쥐에게 각각 헤로인이 든 물과 일반 물을 동시에 제공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혼자 격리된 쥐는 헤로인 물만 집요하게 마셨지만, 사회적 환경이 충족된 쥐는 대부분 일반 물을 선택했고 헤로인 물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이 실험은 중독의 본질이 물질 자체의 중독성이 아니라 '연결의 결핍'에 있음을 시사했다. 외롭고 고립된 상황이 중독의 토양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사람의 뇌는 사회적 연결을 갈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오미 아이젠버거 미국 UCLA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배제를 경험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은 신체적 통증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영역과 사실상 동일하다. 외로움은 비유적 고통이 아니라 말 그대로 뇌가 느끼는 실제 고통인 셈이다.
소속감이 충족되지 않으면 뇌는 그 공백을 다른 방식으로 채우려 한다. 알코올, 도박, 스마트폰 과몰입, 폭식처럼 도파민을 빠르고 강렬하게 자극하는 행동들이 그 대안이 된다. 매튜 리버먼 UCLA 사회신경과학 연구소 교수는 2013년 저서 '사회적 뇌'에서 인간의 뇌는 사회적 연결을 1차적 보상으로 처리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다른 보상 체계가 과활성화된다고 설명했다.
즉 중독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뇌가 채워지지 않은 소속감의 허기를 엉뚱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혼자 버텨서는 그 허기를 채울 수 없다.
알코올 중독 회복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에 보급된 '익명의 알코올중독자 모임(AA)'이 90년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비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2020년 의학저널 코크란 리뷰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AA 참여자는 단순한 개인 심리치료만 받은 집단보다 1년 뒤 단주 유지율이 42% 더 높았다. 프로그램의 핵심이 단순한 금주 다짐이 아니라 같은 경험을 나누는 공동체 형성에 있기 때문이다.
지축종합사회복지관이 2023년부터 매년 정신건강 사례관리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지역사회 내 중독 문제 해결과 실무자 역량 강화를 강조하는 것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개인의 의지력에만 기대던 접근에서 벗어나, 지역 공동체 안에서 소속감을 회복시켜 주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인식이 현장에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조셉 마틴 미국 텍사스A&M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이 2022년 중독 치료 프로그램 참여자 850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사회적 지지망의 질이 높다고 응답한 집단은 재발률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51.3% 낮았다. 연결의 질이 회복의 질을 결정한다는 의미다.
중독 문제를 겪고 있지 않더라도 이 연구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술 한 잔이 두 잔 세 잔이 되고, 먹는 걸로 감정을 달래는 패턴이 반복된다면 의지력을 탓하기 전에 먼저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요즘 충분히 연결되어 있나?'
소속감은 거창하게 채워지지 않는다. 단골 카페 사장님과 나누는 짧은 인사,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잘 지내?'라고 먼저 문자를 보내는 것, 같은 취미를 가진 소모임에 한 번 나가보는 것으로도 뇌는 연결의 신호를 받는다. 중독을 이기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의지력이 아니라 관계라면, 오늘 당신이 먼저 손을 내밀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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