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지난 글에서는 한의 경험 차원과 발생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어서 한의 문화적 의미와 기능에 대해 말씀드릴 차례인데요. 한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한의 경험 과정을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은 처음에 억울이나 화 같은 활성화된 격렬한 정서로 경험됩니다. 그러나 신분제 사회였던 과거, 나에게 억울함과 분노를 준 사건이 쉬이 해결되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한 격렬한 정서를 오래 지니고 살게 되면 몸과 마음에 여러가지 병에 걸리게 됩니다.

오래 해결되지 못한 억울함은 화병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DSM-4에 실렸던 한국의 문화적 증후군이죠. 살아가야 할 날은 많고 병에 걸리는 건 내 손해입니다. 어떻게든 억울함과 화를 삭여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루어지는 과정이 한의 경험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인 '내부귀인'입니다.

내부귀인이란 내가 경험한 사건의 원인을 내 자신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겪은 억울함의 원인은 외부에 있습니다. 누군가가, 사회적 상황이 내게 부당한 피해를 야기한 것이죠. 그러나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과거에는 그러한 부당함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배움이 짧고 사회적 활동이 제한된 이들일수록 그러했겠지요.

그리고, 한국인들의 경험방식 자체가 주관적 해석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부당함'에 민감한 것도 사실입니다. 현대 한국사회의 주요 키워드가 '공정'인 것도, 그 공정의 기준이 매우 상대적인 것도 여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내게 부당함을 느끼게 한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고 늘 화가 난 채로 매일매일을 견디긴 어려우니, 억울한 일을 당한 이유가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부귀인'인 것입니다. 내가 못 배워서, 내가 힘이 없어서, 내가 돈이 없어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죠.




내부귀인의 결과는 '서러움'입니다. 서러움이란 통제불가능에서 오는 무력감에서 비롯된 슬픔입니다. 내가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발생하는 자기연민의 감정이죠. 여기에서 한의 첫번째 기능이 나옵니다.

자신이 경험한 부정적인 사건의 원인이 결국 자기에게 있다고 인정해 버림으로써,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 상실했던 통제력의 출처를 확인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통제감의 욕구(need for control)를 갖습니다. 그리고 통제감의 욕구는 그 사람의 자존감과 정신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한이 발생하는 상황은 통제감을 상실을 의미하며, 통제감의 상실은 자기가치감의 손상 및 그에 따르는 부정적인 결과들로 이어집니다.

이때 통제력의 행방을 찾는 것만으로도 큰 안정감을 줍니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었는지 알 수가 없는 와중에 그게 '내 탓'이라는 이유를 찾았으니까요. 주위에 대한 통제감을 획득하는 것은 귀인(attribution)의 중요한 심리적 기능입니다.

대다수의 백성들이 자신에게 닥친 부당한 일들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전근대 시대에 이러한 심리적 과정은 부정적 감정을 다스리는 중요한 기제였습니다. 억울함과 분노는 시간과 함께 삭여져 정조 내지는 성격특성으로서의 한이 됩니다.

그러나 내부귀인의 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억울함의 이유는 찾았고 부정적 감정은 완화되었지만 아직 내게 부당함을 주었던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내가 무력하기 때문이라는 자탄은 속을 태우고 입맛을 쓰게 하며 자기연민에 빠지게 하죠. 어떤 사람들은 자탄과 자기연민에 빠져 슬프고 어두운 나날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기연민에서 벗어나 상실한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동기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한국문화에서의 한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에는 잃어버린 것,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원통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원통함은 상황을 극복할 동기로 바뀌죠.




'내가 못배워서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부를 하고, '내가 돈이 없어서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을 벌려 하며, '내가 힘이 없어서 당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힘을 가지려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게 억울함과 서러움을 주었던 상황을 극복하는 결과로 나타나죠.

따라서 한국인들에게 한은 한번 생기면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슬픔에 빠져 있어야 하는는 무엇이 아닌, 맺히면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이 풀리면 아주 그냥 기분도 좋고 에너지도 넘치는 감정이 찾아옵니다. 신명이죠.

이것이 옛사람들이 한과 신명을 함께 언급했던 이유입니다. 우리의 예술에는 '한과 신명'이라는 키워드가 항상 함께 합니다. 가장 한스러운 춤이라는 '살풀이'는 진행될수록 역동적이고 힘찬 춤으로 바뀌어갑니다. 제목 자체가 살'풀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따라서 한을 어둡고 퇴영적인 정서로만 이해하는 것은 매우 모자란 이해입니다. 


한은 반드시 풀어야 한다는, 신명을 경험해야겠다는 동기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식인들 중에는 한풀이를 뭔가 저급한 동기와 행동으로 이해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모르시면 가만히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과 신명은 한국문화를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상징입니다. 한과 신명은 한국인들이 왜, 어떤 지점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또 언제, 어떻게 이를 치유할 수 있는가를 알려줍니다. 개인적인 과정도 과정이겠습니다만, 특히 '한국인'이라는 집단의 동기와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죠.

한에 대해서는 이정도로 마무리하고 신명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TAG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psytimes.co.kr/news/view.php?idx=1002
  • 기사등록 2021-04-08 15:47:44
  • 수정 2021-04-08 16:01:1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