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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편집부 ]
멀쩡하게 서 있다가 갑자기 눈앞이 새하얘지고, 다음 순간 바닥에 쓰러져 있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당황해 달려온다. 요즘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이런 경험이 부쩍 늘고 있다.
구글 트렌드에서 '미주신경성 실신' 검색 관심도는 2021년 10월 24에서 최근 급격히 치솟았다. 단순한 건강 문제로 보이지만,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의 이면에 현대인의 만성 스트레스와 감정 억압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다.
미주신경성 실신은 심장과 뇌를 잇는 미주신경이 과도하게 자극받을 때 일어난다. 혈압과 심박수가 갑자기 떨어지면서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고, 몸이 스스로 꺼지듯 의식을 잃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이 매년 발표하는 '2024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낀다고 답한 20~30대 여성 비율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문제는 이 실신이 단순한 신체 오작동이 아니라는 점이다. 스티븐 포지스 미국 인디애나대 정신과학과 교수가 제안한 '다미주 이론(Polyvagal Theory)'에 따르면, 인간의 신경계는 극도의 위협을 감지했을 때 마치 동물이 죽은 척하듯 몸 전체를 셧다운시키는 원시적 반응을 보인다. 현대의 만성 스트레스가 뇌로 하여금 '지금 위험하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게 만들고, 그 끝에 몸이 비상정지를 선택하는 셈이다.
특히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안으로 꾹꾹 누르는 습관이 미주신경 과활성화를 부추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 그것이 반복되면 몸은 언젠가 스스로 멈춰버린다.
에마 홀러런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연구원이 2022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35세 여성은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감정 억압 빈도가 평균 41% 높게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감정적으로 보이면 안 된다', '강해 보여야 한다'는 압박을 내면화한 결과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인간관계에서 끊임없이 타인의 감정을 살피고 자신의 감정은 뒤로 미루는 삶이 신체에 쌓여가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감정 억압(Emotional Suppression)'이라 부른다. 제임스 그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억압할수록 자율신경계 반응은 오히려 더 강하게 나타난다. 겉으로는 차분해 보여도 심장은 더 빠르게 뛰고, 혈압 변동폭은 더 커진다는 것이다. 오래 참아온 몸이 결국 실신이라는 극단적 방식으로 신호를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나아가 '착한 사람 증후군', 즉 과도한 순응 성향을 가진 사람일수록 만성적 긴장 상태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거절하지 못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며, 아프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상태가 지속되면 자율신경계는 서서히 균형을 잃어간다.
심리신체의학(Psychosomatic Medicine)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는 현상을 연구해왔다. 베셀 반 데어 콜크 미국 보스턴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저서를 통해 '몸은 점수를 기억한다'고 했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결국 두통, 소화 장애, 실신 같은 신체 언어로 바깥에 나온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주신경성 실신 환자의 상당수는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 식사 불규칙이 동반된 경우가 많다. 몸이 보내는 이 신호를 단순히 '저혈압이라서', '밥을 못 먹어서'라고 넘기면 근본 원인을 놓치게 된다. 심장이나 혈관 문제가 아닌데도 반복적으로 실신한다면, 그것은 정신건강 전문가와도 이야기해봐야 할 신호다.
중요한 것은 이 증상이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오랫동안 너무 열심히, 너무 혼자서 버텨온 몸이 보내는 SOS다.
미주신경의 균형을 되찾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호흡이다. 4초 들이쉬고 6~8초 내쉬는 '길게 내쉬기 호흡'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과긴장 상태를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포지스 교수 연구팀은 하루 10분의 느린 호흡 훈련이 4주 만에 미주신경 긴장도를 유의미하게 개선했다는 결과를 2020년 발표했다.
감정을 글로 쓰는 습관도 도움이 된다. 제임스 페네베이커 미국 텍사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 15~20분씩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적는 '표현적 글쓰기'가 자율신경계 반응을 안정시키고 면역 기능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 쓸 필요 없다. 오늘 힘들었던 것, 말하지 못한 것을 그냥 적으면 된다.
혹시 요즘 부쩍 어지럽거나,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갑자기 식은땀이 나는 경험이 잦아졌다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한 번쯤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삼키기 전에, 오늘 딱 한 번만 '나 좀 힘들었어'라고 인정해보는 것, 그것이 뇌와 몸의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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