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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따르면 행복하다는 느낌은 몸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반응이다. 생화학적 기제는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유쾌한 감각으로 보상한다. 돈, 사랑, 명예, 친구 사귀기, 도움행동 등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대상은 대개 인간의 생존과 번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우리는 행복하다는 느낌을 얻기 위해 이런 것들을 추구한다.

따라서 가장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약을 먹는 것이다. 1932년 출간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는 모든 사람들이 ‘소마’라는 약을 복용한다. 이 약을 먹으면 사람들은 아주 행복해진다. 책이 출간될 당시만 해도 공상에 가까웠던 이 아이디어는 이미 우울증 치료 등 임상 장면에서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알약 하나로 행복한 느낌을 얻을 수 있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던 일들은 뭐란 말인가? 굳이 학교를 다니고 어학을 공부하고 회사를 다니고 이성을 만나고 결혼해서 자식을 키우고 행복해지기 위해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

행복이 뇌에서 전해지는 감각이라면 직접 뇌를 자극하여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안될 이유가 무엇인가? 행복해지는 약이 나오면 먹겠냐는 질문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하면 약을 먹겠다는 쪽과 먹지 않겠다는 쪽의 비율이 대개 비슷하다. 뭐 개인의 선택이니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반드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사는 이유다. 우리가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일체의 세상사에서 벗어나 하루 한 알의 약으로, 또는 머리에 쓰는 작은 장치로 하루종일 행복할 수 있다면 굳이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은 행복을 위해 필요하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재미없거나 때로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도 견뎌야 하고, 뇌는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시키기 위해 보상으로서 행복감을 주게끔 발달했다.

보상이 미리 주어진다면 그 어떤 고통도 감내할 이유가 없다. 즉 사람들은 살아갈 이유를 잃게 된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식의 삶을 마약이나 도박중독자들에게 흔히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지 출처가 불분명한 긍정적인 정서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살아갈 이유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까? 왜 사냐는 질문은 언제나 말문을 막히게 한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시도 있지 않은가. 물론 시인의 웃음은 삶에 달관한 이의 웃음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할 말이 없어서 웃게 마련이다.

문득 영화 하나가 떠오른다. [트루먼 쇼]. 트루먼은 사상최대 TV쇼의 주인공이다. 그가 사는 마을, 씨 헤븐(sea heaven)은 하나부터 열까지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세트다. 부모님과 친구, 아내까지도. 트루먼은 씨 헤븐에서 그야말로 완벽한 삶을 산다. 완벽한 날씨, 완벽한 가족, 완벽한 친구, 완벽한 직장. 그러나 트루먼은 이 완벽한 세계를 떠나려 한다.

물을 무서워하는 트루먼이 바다로, 폭풍우를 무릅쓰고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트장의 벽에 부딪친 트루먼에게 쇼의 연출자는 이야기한다.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로 가득 차있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그럼에도 트루먼은 캄캄한 세트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자신의 삶을 찾아서.
완벽한 세트 안에서 안정되고 평화로우며, 다른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었다. 사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인간은 주어진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주어진 자극에 반응하는 것은 내 삶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주어진 자극에 대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다.

빅터 프랭클이 삶의 의미라는 개념에 주목하게 된 계기도 이와 같다. 빅터 프랭클은 그 어떤 긍정적인 반응도 기대할 수 없는 자극들만 존재하는 강제수용소에서 희망을 찾아내고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바꿔나가는 인간의 능력을 보았다.

물론 가혹한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간 이들도 많았지만 사람들에게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결국 어떠한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이 찾는 살아갈 이유다. 빅터 프랭클은 그것을 삶의 의미라고 하였다.

우리의 행복은 스스로 찾는 삶의 의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이지 매일같이 즐거운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우리말에 보람이라는 말이 있다. 한 일에 한 만족감 또는 자랑스러움이나 자부심을 갖게 해 주는 일의 가치를 뜻하는 말이다. 어느새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이 돼 버린 보람의 의미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군가의 가사에 잘 드러난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면 고향의 안방~”

‘고향’이나 ‘안방’은 모두 편안함과 만족감을 상징한다. 군대의 일과는 힘든 일로 꽉 차 있다. 그러나 그 일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게 된다. 즉, 보람이란 의미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이다.

내 삶의 의미에 연관되지 않은 재미와 쾌감은 일시적이며 내게 살아갈 이유를 주지 못한다. 삶에서 보람을 찾는 것이야말로 지속적인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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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6-18 09:52:22
  • 수정 2021-06-22 10: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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