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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 화가 나!



나는 늘 화가 나있었다. 나는 이해받지 못한 채로 지냈으며, 폭력에 노출된 채로 두려움에 떨며 자랐으며,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나는 따뜻함을 몰랐다. 이해와 용서라는 따뜻함.


내가 타인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화를 잘 내거나 흥분을 잘하는 이유를 정당화하는 변명이 아니다. 어쩌면 변명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미 '나 통제권'을 잃은 나는 분노가 나를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안에 화가 많구나. 나는 어쩌면 분노조절장애일지도 모르겠다고 인정해야 했다. 모든 마음치유에서 인정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이 단계를 거치지 못하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는 것. 그것은 문제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사실 그전까지 '그 정도는 아니야. 조금 화가 난 것뿐이야.' '목소리 좀 크게 낸 것 가지고 뭐라그래. 내가 원래 목소리가 좀 커.' '내가 원래 불의를 못 참아. 원래 성격이 그래.' 이런 말들로 나를 변명했다. 하지만 인정을 하고 나니, 그런 변명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 내 안에 화가 좀 많아. 나는 화를 잘 내. 어쩌면 분노조절장애일지도 모르겠어."



나를 치유하는 첫 단계, 인정



내 안에 그것이 있다는 것. 그 감정이라는 존재를 알아주는 것 만으로 나는 큰 위안을 얻는다.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감정은 나에게 부정당함으로써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었다. 내가 그것을 그것이라고 인정해줌으로써, 그것은 비로소 이름을 가지고 내 안에 남게 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중에서


내가 그 감정을 인정하기 전까지, 그것은 내가 다룰 수 없는 감정이었다. 왜냐하면 내 마음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내가 인정할 수 없었던 외부의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외부의 감정을 내가 다룰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인정하는 순간, 그것은 내 안으로 들어와 이름을 가졌으며, 내가 이름을 준 나의 감정이 된다. 행복이나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만 인정하고 내재되어야 한다는 그릇된 생각이 우리의 부정적 감정을 거부하는 습관으로 내재되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이 바로 나다!



나의 현재 문제를 인정했다면, 다음은 그것을 초래한 과거 문제로 가본다. 나를 상처 주었던 어떤 사실, 사건 등. 그 사건이 나에게 미친 영향을 내가 직접 말로 해보거나 글로 써보는 것이다.


가정 폭력, 학대 피해, 학교 폭력, 또는 친구와 싸운 일로 혼자만 몰려서 억울했던 일 등. 또는 그냥 놀림받았던 사건이 너무 자존심 상했다면? 모임에 나갔는데 은근히 주동자에 의해 따돌림당해서 자존심이 상했다던지, 어떤 친구 하나가 나만 만나면 돈을 뜯어낸다든지. 이렇게 나를 아프게 하는 모든 감정, 내가 다룰 수 없었던 감정을 말로, 또는 글로 풀어내 본다.



 나는 가정폭력을 겪었고, 보호받지 못했어. 사랑받고 싶었는데, 인정해주지도 사랑해주지도 보호해주지도 않았어. 내가 잘못해서 나 때문이라고 한 모든 것들이 너무 미워. 나도 내 잘못이 있었다는 걸 인정해. 하지만 나는 어린아이였잖아. 어린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주지 않고, 어른스럽게 행동하기만을 요구했어. 하지만 당신도 어른답지 못했잖아. 나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당신에게 있었어! 그런데 당신은 오히려 나를 폭행했고, 소리를 질러댔고, 무시하기 일수였지. 내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았어. 그래서 화가 났어. 나도 감정이 있다고, 나 많이 아프다고 아무리 말해도 들어주지 않아서, 자꾸만 큰소리치고, 화내게 되었어. 들어달라고, 들어달라고... 그렇게 화만 남게 되었어. 들어주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내가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를 공격해야 했어. 아무도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으니까, 세상은 나를 공격하는 사람뿐이라 여겼어. 그러니 내가 먼저 공격해야 안전하다고 느꼈어. 언제나 날을 세워야 했어. 그렇지 않으면 언제 공격당하고 아프게 될지 모르잖아. 나는 나를 보호하려고 그랬어. 나는 아프기 싫었어...... -나의 이야기 중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나이며,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나는 이런 성격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주장, 또는 고백한다.


이것은 나의 감정을 편들어주는 것이다. 변명해주는 것이다. 어린 자녀, 또는 동생 등 내가 편들어 줘야 할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아이가 친구와 싸움이 났을 때, 나는 상대 편을 들어줘야 할까 내 아이 편을 들어줘야 할까? 내 감정도 뻔하다.


상대방을 변명해줄 필요도, 이해해줄 필요도 없다. 그것은 그다음에나 나오는 숭고함이다. 우선 내 감정이 오롯이 이해받았을 때만 나올 수 있는 감정이 이해와 공감이다. 먼저 내 감정이 이해받지 못하면 타인의 감정도 이해할 수 없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이해해 버리면, 내 감정은 버림받았다고 느끼게 된다.


내가 어릴 때, 친구와 다툼이 났다고 가정해보자. 친구 엄마가 친구 편을 들며 나에게 잘못했다고 사과하라 한다면? 거기에 가세해 우리 엄마도 친구 편을 들며 나에게 사과하라고 하면? 물론 잘잘못을 따져야 하지만 '싸움'이란 본디 '쌍방'일 경우가 많다. 누군가 더 '크게' 잘못한 것은 보일 지언정 누가 먼저 '도발' 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도발당한 사람은 늘 억울하다.


타인을 위하는 이타심은 먼저 나를 위하지 않고는 발휘되지 않는다. 이것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아 자연스럽게 쌓이고 쌓인 사람이라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런 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타인을 먼저 이해하게 되면 남는 것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내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이 사라졌으니, 결국 아무 대처도 못한 내가 잘못이거나, 바보 같았던 내가 잘못이거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잘못이거나, 그냥 내가 존재한 것 자체가 잘못이게 되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을 등지거나,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이거나, 은둔하는 흑화의 단계로 가게 되는 것이다.




인정하기. 모든 마음 문제의 시작점이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키와 같다. 아픔과 슬픔, 고통을 알아주기 위해, 내 마음의 문제를 진단하기 위해 마음으로 들어가기 위한 첫걸음. 그것은 인정하기 단계다. 내가 그런 상태라는 인정, 내가 그런 문제를 겪고 있다는 인정, 그것이 바로 나라는 인정. 이러한 인정이 바로 외면했던 나와 화해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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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6-22 10:02:28
  • 수정 2021-06-22 10:5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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