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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못이 없어! 상황이 나빴을 뿐이라고. -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나르시시스트
  • 기사등록 2021-07-27 09:23:16
  • 기사수정 2021-07-27 09: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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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는 자기가 잘못한 것에 대해 언제나 합당한 이유 등을 통해 변명과 핑계를 댄다. 그래서 항상 자신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이를 낮잠을 재워두고, 나도 함께 잠들었다. 물론 전화벨은 진동이다. 그래서 전화가 오는지도 모르고 꿀잠을 잤다. 그런데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 전화를 걸어보니 약속시간이 지나서 그냥 준비한 것을 모두 풀어두고 아이와 함께 있다며 다음에 보자고 했다. 나는 무척 미안해했다.


나르시시스트는 언제나 완벽한 변명 거리가 있다. 나도 그 당시에는 그랬다. 전날 아이가 잠을 설쳤다던가, 아이가 아파서 내가 잠을 설쳤다던가. 그래서 깜빡 잠들었다는 핑계 꺼리는 있었다.


그러면 친구는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연락을 줬더라면 준비하고 기다리지 않았을 테니 기분이 덜 나빴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또 '약속 깨기는 싫어서, 너를 꼭 만나고 싶어서..'라고 미리 연락을 못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나르시시스트 자신은 언제나 '완벽한 존재'여야 하며, 문제 발생 시 자신의 완벽을 깨트리는 주변 사람이나 상황이 문제다. 그래서 그들은 '너 때문에' 또는 '너만 아니었으면'이라는 '남 탓' 말투를 자주 사용한다.


나도 그때는 말도 못 하는 돌쟁이 아이를 탓하며 친한 친구를 만나지 못한 넋두리를 늘어놓았었다. 하지만 나는 본질을 잊고 있었다.


내가 '친구를 소중히' 여겼더라면 나는 '친구와의 약속'을 소중히 여겼을 것이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또는 '친구의 시간'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친구가 앞으로 깨질 약속에 '헛된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미리 연락을 줬을 것이다. 또는 '친구의 감정'을 소중히 여겼더라면, 친구가 약속이 깨져서 실망하게 될 것을 염려하여 어떻게든 미리 연락을 주던지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던지, 늦을 수도 있지만 지켜보겠다는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구의 기대감을 꺾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나는 그중 어느 것도 하지 않고 친구와의 약속을 방치했으며, 결과적으로 친구는 자신이 '존중받지 않았음'에 나를 친구로 곁에 두어야 하는지 까지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에도 알았더라면 나는 친구에게 그렇게 사소한 일로 상처를 주지 않았을 텐데. 이미 지나간 시간은 그녀에게 상처로 남았고, 내게는 미안함으로 남았다. 그런데 그때는 친구를 달래 보겠다는 목적으로 온갖 핑계를 대며 "미안해, 미안해~"라는 말로 때웠다. 그때는 몰랐다. '친구의 무게감'과, '친구의 소중함'을.




그때 당시 나의 모든 관계가 그러했다. 가볍고 쉬웠으며,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늘 정당하고 합당한 핑계가 있었다. 나는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언제나 정당한 핑곗거리를 장전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상대로 하여금 상처나 실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든다고 하여도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어떻든, 나는 언제나 내가 가장 큰 피해자라는 피해의식 속에 살았고, 상대가 너무 따진다느니, 너무 피곤하게 산다느니, 까다롭다는 말들로 문제의 잘못을 내가 아닌 그들에게 떠넘겨버리고는 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면전에서 내뱉지는 않았다. 그저 그렇게 생각할 뿐. 하지만 관계가 악화될 경우, 그런 생각이 사실이 되도록 만드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이럴 때 가스 라이팅이 시전 되는 게 아닐까.



자기 자신이 소중하면 남들도 소중하다. 자존감이 낮은 나르시시스트는 자기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한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 그보다 더 나아야 하고, 그보다 더 높아야 온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중하지 못한데, 타인만 소중하다고 생각할 리 만무하다. 그들에게 있어 주변인은 자신을 돕는 사람이거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이거나, 자신이 밟고 올라서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 무언가 대단해 보이는 사람 곁에는 설 수가 없다. 자기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단하지 않아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틀려도 괜찮아."

"달라도 괜찮아."

"느려도 괜찮아."

"예쁘지 않아도 괜찮아."

"멋지지 않아도 괜찮아."

"못나도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너는 너일 뿐이야. 너는 너라서 소중해. 너는 존재 자체로 소중해."


"네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사람이든,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만한 가치가 있어. 너는 소중한 사람이야."



'사실은 내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닐까?' 고민되어서 이 글을 찾아보았다면, 당신은 나르시시스트가 아닐 것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며, 인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하여 문제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쩌면 인격장애 부모의 학대를 경험한 피해자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낮은 자존감으로 아픈 당신에게, 그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말을, 이제는 들려주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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