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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킨십.


엄마는 아기를 끌어안고, 아기는 엄마 가슴을 끌어안고 젖을 문다. 뱃속에서 연결되었던 탯줄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듯이. 세상에 갓 나온 아기는 정확하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대신 아기들은 입으로 세상을 탐색한다. 손에 쥐는 것은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간다.


보이지 않는 엄마를 아기는 입으로 인식한다. 아기에게 엄마는 입 안 가득 들어차는 몰랑한 젖가슴의 감촉, 따뜻한 모유다. 그리고 자궁 속에서 듣던 엄마의 심장소리까지 더해진다.


이 순간이 일생에 가장 포근하고 안정된 순간이다. 그 어떤 불안감도 없는, 엄마라는 큰 존재가 나를 완벽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단단한 순간. 평생 지치고 힘겨운 때에 나를 지켜줄, 무의식에 기억될 따뜻한 정서적 집.



그래서 사람들은 입 안 가득 들어차는 무언가를 탐한다. 음식, 술, 담배, 음료로 입 안을 채우고 싶어 한다. 아기 때 엄마 품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그렇고, 자존감과 마음이 허약해 그때로 숨고픈 욕구가 강한 이들이 그렇다. 외롭고 좌절해도 티 내며 힘들다고 외치지 못하는 남자다운 남자들이 그렇다. 불안의 시대, 욕구불만의 시대에 먹거리는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맛집, 먹방, 음식 배달, 식자재 새벽 배송의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삶이 거칠어질수록 사람들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에 집착한다.




아이는 오늘도 나를 찾는다.


 “엄마아~~! 배고파!!”


투덜거리며 밥순이는 또 끼니를 챙기러 간다. 내가 어릴 때 ‘엄마 배고파!’를 외치면 늘 들려오는 대답이 있었다.



“나만 보면 밥 달래. 내가 밥으로 보이니??!”



맞다. 엄마는 밥이다. 젖먹이 시절 입으로 머금던 정서적 안정감. 엄마가 해주는 밥은 유아기 때 경험했던 그 충만한 안정감을 담은 정서적 밥이다. 비록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을 입 안에 넣으며 젖 먹던 순간의 평안을 나도 모르게 담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엔 엄마의 저 말이 참 이상하게 들렸다.


‘엄마는 밥 주는 사람이니까 밥 달라고 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왜 엄마 얼굴만 보면 배가 고플까, 스스로도 참 궁금했다. 잘 먹지도 않는 아이였는데.


하루 종일 관심받지 못하다가 엄마의 손길 담은 밥으로라도 허기진 마음을 채우고 싶었던 마음, 온갖 풍파를 다 겪어보고 나서야 그 마음을 깨닫는다. 갓 성인이 되어 힘든 순간들에 왜 거식 폭식으로 마음을 달랬어야 하는지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받지 못했던, 정서적으로 허기졌던 어린 시절에 그나마 마음을 채울 수 있는 것이 엄마 밥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른이 되어 채울 수 없던 허기짐은 거식 폭식이라는 증상으로 표면에 떠올랐다.





엄마 도움 없이도 씩씩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먹지 않았고,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 참고 참다가 폭발적으로 많은 양을 먹고는 토해버렸다. 이딴 것 필요 없다는 듯이. 토하는 순간은 얼마나 시원하고 황홀한지. 폭식증의 중독적 기제는 이 순간이 핵심이었다. 스스로를 망치는 것으로 채울 수 없는 정서적 허기짐에 반항하는 것. 사랑받지 못한 과거에 대해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는 것. 그러면서도 타인이 나의 못난 얼굴을 볼까 봐 숨어서 전전긍긍하는 것.


이론적으로나 임상에서 배웠던 심리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이론을 세운 사람들은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었겠지만 그 결과는 몇 개의 문장으로 단정 짓듯 표현된다. 그 이론만으로는 구체적인 이해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심리학을 공부하고 치료적 개입을 해보아도 스스로의 행동을 분석하는데 십수 년의 세월이 걸렸다. 현실에서의 상황과 행동을 이해하고 나서야 심리학의 원리들이 그림 그리듯 펼쳐지며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그리고 내 행동의 이유를 알게 되자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나는 나의 허기짐을 제대로 채우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타인을 향한 원망도, 자기 파괴적인 행위들도 멈출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다 크기 전에 이 모든 것들을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와 같은 일을 반복해서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젖을 물리고, 사랑을 표현하고, 끝없이 설명해준다. 언제까지나 나는 너의 집이 되어줄 것이라고. 어른이 되어 지치고 힘겨울 때 항상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언제든 돌아와 양껏 사랑을 먹고 다시 일어설 힘을 가져가라고.



남편과 나는 가끔씩 투덜거린다. 어쩌다 가장 기본이자 밑바닥에 있는 요식업을 하고 있을까 하고. 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입으로 탐하는 먹거리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을 가진 매개체라는 것을. 그중에서도 커피는 엄마 젖과 같이 따뜻한 휴식이며 끊을 수 없는 중독적인 음료이니까.


아이에게 주는 사랑만큼, 많은 사람들에게도 깊은 휴식으로 다가가는 한 잔의 커피를 만들고자 한다. 오랜 노력과 마음을 쌓고 쌓는 중이다. 진심을 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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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8-18 1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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