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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이가 행복한 미래를 만든다 -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준비
  • 기사등록 2021-09-06 13:34:14
  • 기사수정 2021-10-05 16: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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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이 

어떤 글이건 쉽게 생각하거나 

소홀하게 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난히도 

아이들과 관련된 글을 쓸 때에는 

좀 더 진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사람을 돕는 제 직업 상 

어떤 내담자나 고객분들을 만나건 

쉽게 생각하거나 소홀하게 대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난히도 

아이들과 관련된 문제라면 

의자를 당겨 앉아 

좀 더 진지하고 

신중하게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제가 일상적 상황으로 돌아가 

한 개인이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길거리나 대중교통에서 

아이들은 만나게 되면

저절로 환하게 웃게 되며 

습관적으로 마치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아이들을 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우리 모두의 행복한 

미래가 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아이들이 

불행하고 고통받는 일들이 

몇가지 발생했습니다.. ㅠㅠ


우리 아이들이 불행하면 

결국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미래가 오게 됩니다.. ㅠㅠㅠㅠ



우리가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



제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이처럼 행동하는 이유는 

"아이들은 한 명 한 명이 

정말 소중하며, 

그 어느 누구라도 

아주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한 명 한 명 

소중한 이유'는 

지금은 작고 어리고 

여린 한 명의 아이이지만 

이 아이는 후일 세상을 바꾸는  

의미 있는 존재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에는 

세상을 바꾸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기도 하지만 

세상을 망치고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는 

가능성 도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가 있는 이유는 

그들은 백색의 도화지와 같은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스스로를 지키거나 

보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진심을 다해 대한다면 

누가 봐도 미소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그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그들의 백지를 

더럽히거나 막 다룬다면 

당최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 되거나 

혹은 보기만 해도 

섬뜩한 그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아픔은 

백배나 더 아프게 

느껴지는 이유



직업 상 

저의 핵심 역량과 스킬은 

'공감'입니다. 


때로는 

내담자나 고객 자신 보다도 

상대방의 감정을 

더 정확하게 읽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감정을 

공감할 때에는 훨씬 더 

증폭된 공감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도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아이들의 순수한 감정을 느끼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실제로 느끼는 

행복이나 아픔은 

제가 파악하고 느끼는 것의

최소한 열 배 이상일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어른들은 대단히 영향력이 

강한 존재입니다. 

그중에서도 부모의 영향력은 

절대적입니다. 


어른이나 부모의 

긍정적 한마디에 

아이들은 안도감을 느끼며 

안심할 수도 있으며, 

엄청난 자신감과 

기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대신에 어른이나 부모들의 

위협적인 한마디는 

아이들에는 비교할 수 없는 

걱정과 불안을 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서 

절대적 존재인 부모의 

(부정적) 감정 발산은 아이들에게는 

생존과 관련될 정도로 

절박함을 동반한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두 가지 사건


 

최근 전문가로서 

관심을 가지게 된 

두 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 모두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가슴 아파했던 '정인이 사건'과 

'의정부 중학생 노인 폭행 사건'입니다. 


두 사건 모두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해봐야 할 이슈를 

던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정인이 사건'으로 

온 매체들이 분노에 들끓으면서 

정인이 양모에 대해서 

분노하고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언론에 떠드는 

양모를 향한 일시적인 격한 분노는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보면 

'학대가 학대인지 모르는 학대'들을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애정' 혹은 자녀에 대한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포장된 

심리적 가해와 폭력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물론 정인이 사건과 

정인이 양모에 대한 비난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마음가짐입니다. 


특히 '의정부 중학생 

노인 폭행 사건'에 주목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불행히도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것은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기본적인 본능'입니다.

이는 동물의 왕국을 

한 번만 보셔도 

방 알 수 있습니다.


자기보다 약한 노인분들에 대해서 

반말과 폭행을 하다가 

덩치 좋은 어른이 와서 

한마디를 하니 꼼짝도 못 하는 것이 

적절한 행동은 아니지요!


그리고 폭행을 당한 노인분들의 

마음의 아픔과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단지 자신들의 재미와 자극을 위해서 

심지어는 동영상을 찍어서 돌리는 

유희 거리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은 

문제인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배려를 

학습하지 못하고, 

내 행동으로 인한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여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는 

능력 자체가 학습되지 않은 것입니다. 


단지 대 놓고 아이들을 

때리지 않고 학대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 어른들과 그 중학생들의 부모들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방임'과 '무책임'을 

애정과 사랑으로 착각하는 순간 

발생할 수 있는 대표적인 문제 사건입니다. 



우리가 두 가지 사건 

모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얼핏 겉으로 나타난 

양상은 반대이나 

두 가지 사건은 

공통점이 있으며, 

연결되어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정인이는 피해자이고

중학생들은 가해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정인이와 중학생들 

모두 피해자입니다. 

어른들의 무책임과 

무관심의 피해자입니다. 


정인이는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생각만 해도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마음에 울컥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정부 중학생들이 

지금 그런 행동을 보이는 이면에 

'지금까지 어떤 대우와 

양육을 받아왔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촉법소년이라 

처벌을 면제받는 이유는 

그들의 문제 행동을 

만들어 준 데 대해서 

상당 부분이 어른들과 

부모들의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도 피해자가 맞습니다. 


특히 정인이 양모의 경우 

특별한 성격 상의 문제나 

폭력적인 성향 자체가 

그리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두 부모가 모두 배경과 

사회적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친딸은 애정과 사랑으로

잘 돌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단지 정인이에 대해서는 

일종의 장난감이나 마음대로 해도 되는 

애완동물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정인이에 대해서 

본인의 재미와 자극을 위해서 

괴롭히고 때리면서 

심지어는 촬영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행동들이 

혹시 의정부 중학생들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제2의 정인이와 

제2의 중학생들이 

나오지 않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동에 대한 학대나 폭력은 

절대로 없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하게 되는 

생각이어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내 생활 속에서 

내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에 대해서 항상 조심하고 

긴장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건강한 가치관을 형성하고 

올바른 사회적 행동 규범을 

학습하고 개발해주는 것 또한 

필수적인 양육 활동입니다.


이는 생각보다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나는 아이를 때리고 

학대하지 않았어!'라는 

무책임한 변명으로 

용서될 수 없는 나쁜 행동입니다. 


부모로서 & 어른으로서 

책임감과 의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준비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약 이와 같은 

건강하고 균형적인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학대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마음에 

고통과 공포를 주는 

언이나 폭행이 반복되면 

아이들의 마음은 보기만도 

섬찟한 그림과 같아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자신의 분노를 

삐뚤어진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어, 


타인을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노인이라고 괴롭히면서 히히덕 대는 

아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부모가 되었을 때에는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막대하면서 

나의 즐거움과 내 자식만 

소중히 여기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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