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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이정연 ]




#. A 씨는, 몇 년 전,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날은, 유난히 아침에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남편의 방으로 들어갔을 때, 책상 위에 A4 용지 4장이 있었다. 남편이 쓴 유서였다. 경찰이 시신을 확인하러 가자고 할 때, A 씨는 아니라고 했다. 내 남편이 아닐 거라며, 어서 남편을 찾아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 임지영 작,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 / 학교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 우리는 당신을 위로합니다.

“무슨 일이에요?”

한 경찰관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시신을 확인해주세요….”

저 멀리, 앞쪽에 하얀 천에 덮인 물체가 있었다. 무슨 시신을? 왜? 나한테 확인해달라고 한단 말인가? 저기 놓인 누군가의 시신을 왜 하필 내가 확인해야 하는 거지? 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제가 왜? 왜 남의 시신을 확인해야 하지요?”

 

 

조금 다른 유가족, ‘자살 유가족’


 유가족. 죽은 사람의 남은 가족을 의미하는 말이다. ‘유가족’이란 단어 자체로도 마음이 숙연해지지만, 그 유가족 앞에 ‘자살’이라는 단어가, 붙는 유가족이 있다. 바로 ‘자살 유가족’이다. 보통의 죽음과는 달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고인을 보낸. 가족, 친구, 동료 등 의미 있는 관계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유가족들을 ‘자살 생존자’ ‘Suicide Survivor’라고 표현할 만큼, 자살 고위험군 자로 판단한다. 그러나, 정작 자살 유가족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인에 대해 죄책감, 분노, 원망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에 시달려 죽음에 대한 정상적인 애도 과정을 가지지 못하게 되며 점점 삶이 일그러지게 된다.

 

 

외면하고 싶은 감정과 현실


 자살 유가족은, 애도의 시작부터 과정이 엇나간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에 해당하며 자살이 전체 사망원인 중, 무려 24.3%나 차지하지만, 자살한 이들에 대해서 몹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살에 대해, 폐쇄적인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고인의 죽음 원인이 ‘자살’임을 알리는 것은, 고인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죽음의 원인 자체를 숨기거나 거짓으로 속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뿐만 아니라,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일 경우 ‘고인이 자살할 때까지 막지 못했다는 수치심과’에 시달리게 되며 고인의 최측근임에도 불구하고, 왜 고인의 자살을 막지 못했냐는 제삼자의 시선이 두려워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그들은, 고인의 죽음과 동시에 세상에서 고립되게 되는 것이다.

 

 자살 유가족들이 가지는 또 다른 감정으로는 ‘원망’과 ‘배신감’이 있다. 나, 또는 가족, 또는 친구를 버리고 세상을 떠났다는 원망과 배신감에는 분노가 일며, 또한 유가족이 아무런 힘도 되지 못하였다는 무력감 역시 동시에 찾아오게 된다. 또한, ‘왜 하필 자살이란 선택을 했어야만 했냐’ 라며 의문을 가지게 되지만, 이미 망자가 되어버린 고인에게서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할 수 없는 현실은, 자살 유가족의 무력감을 가중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일반 유가족들과 달리 18배의 우울증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 유족인 대비 8.3배에서 9배의 자살률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자살 유가족의 97.0%는 이전과 달리 일상생활의 변화를 겪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 따라서 자살 유가족에 대한 신속한 위기 개입이 필요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자살 유가족’이라는 개념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들은 여전히, 지금도 사각지대에서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상황이다.

 

우리 함께 연대해요, 자살 유가족 자조 모임

 

 매년 9월 11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다. 미국에서는 ‘BE THE VOICE #STOPSUICIDE’ 라는 슬로건으로, 350개의 도시에서 대규모 자살 예방 캠페인을 진행한다. 놀랍게도 캠페인에 참여하는 대부분은 자살 생존자, 즉 자살 유가족이다. 그들은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나눠 입거나, 자살로 잃어버린 아이를 티셔츠에 새겨, 숨기지 않고, 하늘로 간 아들을 공개적으로 추모하거나 사진을 들고 다닌다. 캠페인의 현장은 전혀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그들이, 모여서 함께 연대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자신의 슬픔에 대해 털어놓고, 공감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캠페인은, 어떠한 자살 예방 캠페인보다도, 힘이 있다.

 

 미국에도, 한국에도 자살 유가족의 자조 모임이 있다.

사회학자 윌리엄 피겔먼과 사회 임상 복지사인 그의 부인 베벌리 피겔먼은, 아들을 자살로 잃었다. 그들은 부모로서의 좌절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전문가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기 아들은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고통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 나섰다. 처음, 전문가들과 자살 유가족 간의 치료는 전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자살 유가족들만큼이나 고통을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들은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자살 유가족‘들’을 함께 모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이해하는 연대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자살유가족들은, 지금도 의문을 토로한다. 전 세계 부동의 자살률 1위 국가가 한국이라고 하지만, 자살 유가족들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자살 유족 자조 모임 ‘자작나무’와 성남시자살예방센터 자살 유족 자조 모임이 있다. 자조 모임뿐만 아니라, 중앙심리 부검센터 ‘따뜻한 작별’에서 자살 유가족을 위해, 여러 가지 지원을 하고 있다.

 지금도, 세상에 혼자 고립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자살 유가족들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치유가 되는, 자조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참고 문헌 

1) EBS 다큐프라임 '감정시대' 너무 이른 작별

2) 임지영, 2012,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하루 (학교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 우리는 당신을 위로합니다.)

3) 경상남도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 URL : www.gnmhc.or.kr 

4) 김미진, (2020),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심리교육전공 국내석사, 자살유가족의 가족세우기 애도경험이 죄책감, 우울, 자존감 및 심리적 안녕감에 미치는 효과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서울

5) 중앙심리부검센터 운영 따뜻한 작별, URL : www.warmday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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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9-14 09:27:37
  • 수정 2021-09-24 09: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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