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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의 화법들 - 나는 그러한 적이 없었는지를 돌아보길...
  • 기사등록 2021-09-23 10:09:47
  • 기사수정 2021-09-23 10: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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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님, 물건 봉투에 담아 드릴까요?"



 사람들의 말에는 인격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니, 인격은 '말'의 형태로 (몸 밖으로) 나온다고 하는 게 맞을 수도 있겠다. 같은 말이라도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꼭 같은 말이라도 기분 더럽게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고객님, 물건 봉투에 담아 드릴까요?"


"아니, 그럼 이걸 손으로 다 들고 가리?"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지만, 편의점에서 일하는 한 학생이 온라인에 올린 실제 경험담이다. '감사합니다', 또는 그저 '네'. 이렇게 말하는 게 그리 어려울까?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의 마음엔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 어떤 사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일까?


 대체 이렇게 말하는 저의와 의도 그리고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 사람이 다 나 같지 않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내 맘 같지 않다.


 범위를 좀 더 좁혀 직장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다. 내 맘 같지 않은 그 크기는 직장 내에서 더 크다. 직장은 세상을 짓이겨 축소시켜 놓은 밀도 높은 곳이며, 눈에 보이는 번한 목적과 목표가 응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기대하는 대답과 말을 해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저마다의 목적과 목표가 다르고, 회사는 이것을 이용해 서로를 지지고 볶으며 정반합을 유도해내는 교묘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같은 월급쟁이고, 서로 힘들게 일하고 있다면 서로 한 마디 한 마디 배려하며 말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람 기분 나쁘게 하는 화법들을 모아봤다.


 항상 말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맞아, 맞아'를 외치기보단, 나는 그러한 적이 없었는지를 돌아봤으면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 맘 같지 않다고 하지만,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겐 다른 사람이니.



(직장에서)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의 화법들



1. 자꾸만 변명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화법



 누군가와 말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꾸 '그게 아니고(요)', '아니 아니, 그러니까'를 말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어느샌가 변명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데, 대개 이러한 사람은 '취조'나 '추궁'하듯이 말을 건넨다. 상사 라면 그렇다 쳐도 상사가 아닌 동료나 유관부서 사람 중에도 이러한 사람들이 상당하다.


 예를 들어, 수평적 관계에서는 '아, 저번에 확인하기로 한 건은 어떻게 되었을까요?'라고 물어야 마땅한데, '그거 되었나요?', '왜 안되었나요?', '그 부서는 이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나요?'라며 다그친다. 문제는, 일의 진행 상황이나 현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대뜸 이렇게 말하는 경우다.


 나는 내가 불필요한 변명을 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 커뮤니케이션을 잠시 중단한다.


 잘못하다간 감정이 솟구쳐 오르기 때문이다. 곧장 답변하며 변명하기보단, 시간을 두고 객관적인 자료와 진행 현황을 전체 공유한다.



2. 자존심을 살살 긁는 사람들의 화법



 "김대리 이거 할 수 있지? 이거 뭐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김대리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이 말을 하는 사람은 이게 얼마나 기분 나쁜 말인지 정말 모를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넘겨짚어본다면, 이러하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내가 생각할 때 이 방법은 '하수의 심리전'이라 단언할 수 있다. 김대리는 우선 기분이 상할 거고, 어떻게든 일을 해내겠지만 그 사람과 일하고 싶다는 마음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났을 것이다.


 하나를 얻으려고 열을 잃는 사람들이 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니, 웬만해선... 아니 절대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다.



3. 유체이탈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화법



"제가 할 일은 끝냈으니, 더 이상 저에게 말하지 마세요."

"그건, 제가 담당이 아니라서요."

"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시키니까 하는 거죠 뭐..."


 이러한 말들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일을 끝냈다면, 담당자가 아니라면, 정말 모르는 일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리지 않는 걸까. 끝까지 파고들어 가다 보면 그 끝에서, 이렇게 말한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요 며칠 전, 유관부서와 큰 갈등을 겪은 적이 있다.
 개발 부서에 있던 책임자는 자신이 개발을 다 끝냈으니,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묻지 말고 생산에 문의하라며 커뮤니케이션을 단절했다. 그러나, 생산에 물어보니 개발이 덜 끝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개발 책임자라면 자신이 개발한 제품이 생산되어 판매까지 잘 이어지는지를 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의 무책임한 유체이탈, 업무 이탈, 책임감 이탈, 사명감 이탈의 화법을 들으며 나는 분노했다.


 그리고 나는 그 수준으로 일 하는 그 책임자에게, 그에 걸맞은 예우를 해주기로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사람이 왜, 어떻게 그 자리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4. 진정한 라떼를 말하는 사람들의 화법



 


꼰대보다 더 각성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역꼰대'다.


 '역꼰대'는 <직장내공>에서 언급한 개념으로, 진정한 충고마저 상대를 라떼로 규정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을 잘 곱씹어보면, 배울 점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도움이 되는 말은 받아들이면 되고, 아닌 것은 흘려버리면 된다. '저렇게 해야지...'라는 것도 배움이지만,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것도 큰 깨달음이다. 2단 콤보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무참히 날려 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란 뜻에서 '역꼰대'를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분명 꼰대도 있다.


 충고인지 꼰대의 라떼인지를 가늠하는 기준은 딱 두 가지다. 그 충고에 '강압'과 '반복'이 있으면 라떼라고 규정해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듣고, 얻을 것과 버릴 것은 구분할 것!)


 자신의 자랑이나 무용담을 1절이 아니라 20절, 30절까지 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의 기억력은 붕어와 같지 않을까란 합리적 의심마저 든다.


 몇 번이야 괜찮을지 몰라도,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것도 자신의 자랑과 성공담을 늘어놓고 여기에 '강압'마저 섞여 있다면 듣는 사람의 기분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다시, 두 가지만 말하자면.

 그럼에도 끝까지 듣고 배우고 깨달을 것!

 나는 혹시 그러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할 것!



5. 입만 열면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의 화법



 

나도 안다.


 회사, 직장엔 부조리함이 참 많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우리는 어차피 'Human Resorce', 그러니까 자원이자 부속품이다. 시작부터가 부조리한 이곳에 있는 이유는 월급을 받기 때문이다. 월급 안에는 그 부조리함의 몫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물론, 성에 차지 않지만 분명 우리네의 불만과 불평 모두 월급 안에 녹아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것도 한두 번이다.


 입만 열면 푸념과 불만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행동하지 않는다. 그 부조리함에 맞설 용기도 없고, 의지도 없다. 정작 그 부조리함을 마주하면 그대로 따른다. 그러고 나선 뒤돌아 또 불만을 내뱉는다.


 불만을 내뱉는 사람들의 못된 또 하나의 버릇은 자꾸 상대로 하여금 동조를 원한다는 것이다.

 경청까진 해주겠는데, 그 불만에 모두 맞장구를 쳐주자니 인지적 부담이 상당하다.


 끝까지 동조와 동의를 구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일쑤다. 여기엔,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는 사람도 포함된다. 그들 또한 동조를 구하지만, 동조를 하는 순간 이 사람은 나 또한 어디 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할 거란 걸 직감한다.


 만약, 입만 열면 불만을 말하는 사람 (개선은 안 하면서...)이 있다면, 피하고 보는 게 좋다.


 같이 있으면 믿음직하고, 같이 일하고 싶고, 열정이 함께 타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을 참 잘한다. 언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잘 듣고, 잘 말한다. 그것은 상대를 배려하고, 진심을 내어 놓을 때 가능하다.


 직장 안에서 진심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말하는 '진심'과 그 종류가 다를 수 있겠지만, 이것은 설명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느껴야 한다. 더불어, 나부터 진심을 내어 놓아야 한다. 그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다.


 진심은 말 또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해지곤 한다.

 그것은 숨길 수가 없다. 주머니에 숨겨 놓은 송곳은 언젠간 바지를 뚫고 나온다. 거짓인지 진심인지,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긁어놓는 말과 커뮤니케이션엔 진심의 농도가 옅다.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자, 그렇다면.

 내 말과 커뮤니케이션은 어떠할까?


 사람들의 기분을 맞춰주라는 게 아니다.

 직장에서 내가 가져야 할 진심이 '사람'인지 '일'인지 '성과'인지 '팀워크'인지. 각자가 정의하고 그 진심을 상대방을 배려하며 내어 놓아야 한다. 쉽지 않다. 나 또한 때론 주위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긁어놓는다. 그러나 그것이 내 기분이 상하지 않기 위한 회피의 방법인지, 일을 만들어 나가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인지는 구분하고 스스로를 돌아본다.


 한 편으로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봉투가 필요하냐는 상대방의 말에 그저 '네', 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만 알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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