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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재원 ]


SNL 코리아 인턴 기자 유튜브 썸네일 (https://www.youtube.com/watch?v=PBTjJLrjKcA)


 흑역사를 공유하면서 웃는 사람들


 최근 SNL코리아의 ‘인턴기자’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와 긴장된 몸짓, 실수 투성이인 말, 울먹이는 표정까지, 마치 대학교 1학년이나 사회초년생이었을 시절의 자신을 보는 듯하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해하면서 아무 말이나 내뱉었던 첫 조별과제 발표 때의 기억은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던 ‘흑역사’이다. 누구나 겪는 일이란 것을 알고는 있지만 속상하고 수치스러워서 친구들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곤 했다. 그렇게 외면하고 있던 기억이 유튜브에 뜬 인턴기자 영상을 통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인턴기자의 모습을 보니 오히려 웃음이 났고,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댓글들을 보면서 공감이 되었다.

 

 우리는 흑역사와 관련된 인터넷 글이나 영상을 보면서 웃는다. 흑역사는 없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자신의 과거를 일컫는 단어이다. 사람들은 익명의 힘을 빌려 커뮤니티 영상 댓글 등에 술버릇이 심했던 경험, 고백했다가 차인 경험, 미용실에 갔다가 머리를 망친 경험 등의 흔한 것부터 자신만 겪은듯한 독특한 흑역사까지 모두 털어놓는다. 평소에는 사회적인 이미지나 자존감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기억들을 인터넷 덕분에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인터넷 세상에서는 나의 흑역사 이야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재미와 웃음을 준다. 따라서 흑역사는 한때 개인이 가지고 있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이야기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말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타인이 일방적으로 웃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흑역사 이야기의 특징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웃을 수 있는 형태라는 점이다. 따라서 일방적인 소통인 고해성사나 희화화와는 다르다. 그보다는 양쪽이 모두 웃을 수 있는 ‘유머(Humor)’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성숙한 방어기제, 유머



 단순히 웃기다고 유머인 것이 아니다. 유머는 자신의 갈등이나 스트레스를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유쾌함을 주는 방식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고통스러운 문제를 직면하면서 이를 타인이 즐겁게 들을 수 있도록 전해주어야 유머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유머는 마음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기제의 일종이다. 유머의 재료는 우리가 마주하기 싫어하는 불편한 경험이기 때문에, 이를 표출할 때 유쾌하게 포장해서 표출해야 한다. 유머는 기억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다른 방어기제와 달리, 문제를 직면하고 겉으로 표현해서 해결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신과의사 조지 베일런트(George Eman Vaillant)는 방어기제를 병적 범주, 미성숙 범주, 신경증적 범주, 성숙 범주로 나누었을 때, 이 중 성숙한 방어기제에 ‘유머(Humor)’를 포함시켰다. 성숙 수준의 방어기제는 건강한 성인에게 주로 나타나며, 사회적 상황과 인간 관계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방어기제의 측면에서 흑역사를 바라보자. 흑역사의 근원은 마음의 상처로 남아있는 불쾌한 기억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과거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타인에게 자신의 과거 모습을 투사해서 과도하게 혐오하고 화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춘기를 험난하게 보낸 부모가 그 기억을 혐오한다면, 아이가 사춘기가 왔을 때 지나치게 싫어하고 혼을 낼 것이다. 또는 ‘옛날에 이렇게 하지 말고 저렇게 했어야 했는데’와 같이 끊임없는 공상에 빠질 수도 있다. 이렇게 외면한 자신의 상처는 점점 곪아가면서 내면의 불안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흑역사를 재밌는 이야기로 풀어나간다면 우리는 해당 경험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마주하고, 입 밖으로 후련하게 꺼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웃도록 만들고, 자신 역시도 웃으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할 수 있다.

 


 인터넷의 순기능: 유머로 표출하는 자신의 이야기


 정보의 보고로 시작한 인터넷은 현재 오락의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일상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수많은 사람과 함께 웃고 공감할 수 있는 곳이 생긴 것이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고 동시에 다수와 소통할 수 있다는 특징덕분에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자유롭게 긍정적으로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인터넷은 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인터넷은 익명성 보장으로 인한 무분별한 악성 댓글, 인터넷 중독, 오정보 흡수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수록 인터넷 중독이 높다는 내용의 연구도 지속적으로 나왔다. 그래서 인터넷이 급속히 발달하던 시기의 사람들은 인터넷의 부정적인 영향력에 주로 집중해왔다.


 하지만 인터넷이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그 단점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순기능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오히려 적당한 정도의 인터넷 사용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정신에 이롭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그리피스대학교를 포함한 호주의 한 연구팀은 저소득층 청소년에게 스마트폰을 제공한 후 인터넷 사용 정도가 스트레스 극복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스마트폰을 안 쓰거나 과도하게 쓴 집단에 비해, 적당한 정도로 사용한 집단이 스트레스에 가장 잘 대처하였다고 보고하였다. 특히 온라인상에서의 교류를 통해서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자기표출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효과에 기여하였다.

 

 인터넷에서는 부끄러웠던 과거의 기억을 표출해도 오히려 호응을 받는다. 그래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에 겁을 먹지 않을 수 있고, 이는 유머를 습득할 기반이 되어준다. 다만 인터넷에서만 자신을 표현하고 현실에서는 그러지 못하면 오히려 은둔형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인터넷 환경을 활용해 유머의 방식을 습득한 후, 현실의 친구와 가족 등에게도 자신의 힘든 과거를 유쾌하게 말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유머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출처:

[1] 김경희, & 고영건. (2018). 한국판 베일런트 방어기제 평정 척도의 타당화. Korean Journal of Clinical Psychology, 37(2), 236-251.

[2] Modecki, K. L., Duvenage, M., Uink, B., Barber, B. L., & Donovan, C. L. (2021). Adolescents’ online coping: When less is more but none is worse.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21677026211028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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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0-11 09:5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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