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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한민 ]


길 가던 사람이 넘어지면 하는 말, '괜찮아요?'

오늘은 이 간단한 표현에 숨어있는 문화적 다양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말 '괜찮다'는 '나쁘지 않다' '좋다' '보통이다' '정상이다' '바람직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괜찮다'는 어디서 온 표현일까요?


일단 우리말 '괜찮다'는 '공연치 않다 = 괜치 않다'에서 왔다는 설과 '관계치 않다'에서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먼저 '괜치 않다' 설부터 살펴보면, 괜치 않다는 괜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럼 '괜하다'는 무슨 뜻일까요? 사전을 찾아보니, 괜하다=아무 이유나 실속이 없다.. 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괜치 않다'는 '뭔가 이유나 실속이 있다'는 뜻이겠군요. 넘어진 사람한테 괜찮냐고 묻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라고 넘어진 이유를 묻는 표현이 되겠습니다. 일단은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관계치 않다' 설을 봅시다. 관계치 않는다는 것은 나는 그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 마음을 쓰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즉, 괜찮냐고 묻는 것은 '그 일에 마음이 쓰이냐?'는 것이고, 괜찮다는 대답은 '마음쓰지 않는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말이 돼 보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사람들은 1. 어떠한 일에 뭔가 이유나 실속이 있는 상태, 또는 2. 마음 쓸 일이 없는 상태를 '좋음' '정상' '보통' '바람직함'의 상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겠습니다.


다른 나라사람들은 어떨까요?


북한에서는 '괜찮아요' 대신에 '일없시요'라는 표현을 씁니다. 조금 쌀쌀맞게 들릴 수 있는데요. 네 일 아니니 상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별 일 아니라'는 뜻입니다. 중국어에도 괜찮아요에 해당하는 '没事儿(méi shìr)'라는 표현에 沒事란 말이 있는데 말 그대로 '일 없다'는 뜻이죠.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표현에 따르면 북한이나 중국은 '일이 아닌' 상태, 즉 벌어진 일이 중요하지 않거나 마음 쓸 필요가 없는 경우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어로 괜찮다는 말은 일본영화나 애니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다이죠부(大丈夫)'라는 표현입니다. 누군가 넘어지면 옆에 가서 묻는 말이 "너 대장부냐?"인 셈인데요. 괜찮음에 대한 문화차이가 본격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일본문화에서는 대장부답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한국과 중국과는 다소 다른 느낌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이죠부의 어원이 그렇다는 얘기고 요즘에는 are you OK? 정도의 의미로 쓰이지만 말이죠. 


그러고보니 영어의 OK는 어디서 왔을까요? OK의 유래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유력하다고 얘기되는 것이 기자들이 쓰던 은어에서 왔다는 설입니다. 1830년대 기자들은 장난스러운 이니셜로 기사를 쓰는 유행이 있었다는데요. All Correct(모두 옳다)를 Oll Korrect로 바꿔서 약자로 OK로 쓰기 시작했다는 얘기죠. 



그 외에도 1840년 대통령 후보였던 밴 뷰렌의 지지자 모임 OK club에서 왔다는 설, 인디언들이 쓰던 말에서 왔을 것이라는 설 등이 있습니다만, 그나마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기자들이 쓰던 은어라는 설을 따르자면 미국인들은 모든 것이 올바른(All Correct) 상태가 바람직하다는 문화적 표상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독일은 같은 경우에 Alles in ordnung? 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모든 것(alles)이 질서 속에 있느냐(in ordnung)는 대단히 독일스러운 표현입니다. 세상에 자빠진 사람한테 가서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냐니.. 독일사람들에게 괜찮다는 것은 모든 것이 질서있는 상태..라는 뜻일까요.


물론 어원과 현재 사용하는 언어의 뜻이 일대일로 상응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표현은 대단히 독일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옆 나라 프랑스는 괜찮아요?를 Ça va?라고 하는데, 이 말은 it works? 즉 잘 작동하냐(움직이냐/먹히냐)?는 뜻이랍니다. 다소 기능적이랄까요? 프랑스에서는 뭔가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느냐가 괜찮은 상태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제 수업을 받고 있는 러시아 학생에게 물어보니 러시아어로는 Нормально(나르말나)라고 한다는군요. '정상'을 뜻하는 라틴어(normalis=normal(英))에서 온 표현이라고 하네요. 




다시 우리말 '괜찮아요'로 돌아와서..


'괜찮다'의 어원에 대해 '공연치 않다=괜치 않다'와 '관계치 않다'의 두 설을 말씀드렸었는데요. 단어의 형태로 보면 '괜치 않다' 즉 '아무 이유나 실속이 없지 않다'에 가까워 보이지만, 한국인 심리를 연구해 온 입장에서 괜찮다의 의미는 '관계치 않다'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언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한국인들은 매우 자기-중심적인 심리경험을 한다고 생각되는데요. 이러한 경향은 여러 객관적인 사실보다도 나 자신의 판단을 더 우선하게 만듭니다. 내가 경험한 어떤 일이라도 내가 마음을 쓰지 않으면(관계치 않으면) 별 일이 아닌 게 되고, 내가 마음을 쓰면 중요한 일이 되는 것이죠. 


'괜치 않다'는, 즉 '이유가 없지 않다'는 말도 뜻만 보면 일리가 있지만, 한국인들의 심리적 습관에 의하면 괜찮다는 '관계치 않다'의 뜻에 더 가까울 거라 생각됩니다. 이 경우에 비슷한 말로 '개의치 않다'가 있죠. 사실 많은 경우에 '괜찮다'는 '개의치 않다'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이 주장을 따르면, 한국인들에게 있어 괜찮다는 것은 '마음이 쓰이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관계없이 '내가 마음쓰지 않으면' 그 상태는 괜찮은 것이죠.



즉, 한국인들에게는 괜찮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주관적인 기준이 상당히 강조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외부적 기준이 강조되는 일본(大丈夫)이나 객관적이고 절대적 기준(correct/ordung)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양문화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주관성은 한국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키워드가 됩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조금 더 학술적으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원은 서로 다르지만 여러 문화의 '괜찮다'는 표현들은 그 문화에서 이상적으로 보고 있는 '정상',' 좋음', '바람직함' 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정상, 좋음, 바람직함'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기대와 희망을 품고 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모두가 생각하는 바람직함에 대한 기준은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일부터 새롭게 쓰여질 대한민국의 미래는 정말로 '괜찮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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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1-26 0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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