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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서작가 ]


친한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며 속 얘기가 나온다. 나는 그동안 고민이었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아이의 과잉행동, 산만한 행동, 아이의 교우 문제, 분노를 터트리는 문제, 형제간의 트러블 등을 이야기하며 고민스러워했다.


비슷한 연령의 자녀를 키우는 우리는 늘 아이들 문제를 공유하며 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는 했다. 서로 내 일처럼 고민했고, 서로 도와줄 게 없을까 생각하며 의견을 나누는 사이였다.


그런 기존의 관계가 있었기에 나는 그동안 아이와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아이의 행동이 의심스러워 진단을 받으러 갔고, 아이의 심리 상태가 매우 나빴으며, ADHD 진단을 받은 상태이고, 바우처를 통해 놀이치료를 받고 있다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진심으로 걱정을 해주었고, 따뜻하게 위로를 해주었다. 그 술자리는 나에게 힐링이었고, 위로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친구가 피하는 것을 느꼈다. 친구는 나와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감이 없었지만, 자기 아이와 함께 만나는 자리는 계속 피했다. 전에는 종종 초대도 하고, 같이 어울려 놀기도 했다.


처음에는 학원이며 학습지며 등등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만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나는 스스로 위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과 같은 관계가 이어질 기회가 없어졌다. 나는 결국 그 관계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자기 아이와 어울리는 것이 싫구나!'


그때 드는 절망감, 배신감 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나를 찔렀다. 믿고 의지했던 관계이기에 더 실망했고, 더 크게 상처 받았다. 그 날의 그 술자리를 없애고 싶었다. 그 날 나눈 대화의 기억까지도 없애고 싶었다.


나라도 그랬을까? 내가 친구에게 그런 고민을 들었어도 친구처럼 행동했을까? 친구는 마음을 먹고 피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꺼리게 된 것일까?


나라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도와줄 것이 없을지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며 나누는 사람이다. 적어도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런 계산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그렇게 송곳처럼 아팠다. 아무 관계가 아닌 사람도 그렇게 행동하면 상처를 받게 될 텐데, 관계가 깊었기에 상처는 더욱 예리하고 뾰족하게 나를 찔렀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투정도, 불평도 없이 그렇게 된 관계를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겉으로 피를 흘리지 않을 뿐, 속으로는 새빨간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욱 웃었다.



아이가 묻는다. 그 아이랑 만나서 놀고 싶다고. 왜 요즘은 만날 수 없냐고.


'네가 ADHD라서 그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말은 곧 나를 강하게 찌르는 한 방이었다.


"요즘 많이 바쁜가 봐. 학원도 다니고, 학습지도하고, 동생도 이모를 많이 힘들게 하는가 봐."


"그런 건 전에도 다 했던 거잖아."


"그러게. 그런데 더 바빠졌나 봐."


"같이 놀고 싶다."


"그래, 다음에 기회가 되면 같이 놀면 좋겠다."


결국 잘못은 나다. 내 입이 문제였다.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걸 그랬다. 엄마 때문에 네가 더 외로워졌구나! 이 엄마가 정말 못났구나!


혼자 노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죄의식을 느꼈다. 너를 그렇게 낳아놓은 것도 미안하고, 너를 힘들게 하는 나도 미안하다. 너에게 단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이 없다. 너는 너무나 아픈 나의 손가락이구나!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응, 나도 엄마 사랑해."


그렇게 내 품으로 파고드는 아이였다.






제가 필명으로 활동하며, 아이들 이름도 가명으로 쓰는 이유입니다. 가리고 싶지 않습니다. 당당하니까요. 누군가에게 피해 주지도 않고, 전염병도 아닙니다. 단지 부모가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어떤 '증후군'일 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에게 원망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엄마 때문에 나만 바보가 됐어!' 이런 원망을요.


아이의 질환을 아이에게 동의를 얻지 않은 채로, 부모라는 이유로 밝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어딘가에 계시는 이 땅 위의 부모들에게 치유와 위로를 드리고 싶어 이 매거진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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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3-24 14: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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