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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이정연 ]


 



다리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깁스를 풀었는데도 이후 통증이 심해서 정형외과에 갔었다정형외과는 강남에 있는, ‘스카이 캐슬의 예서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서울의대’ 마크가 떡하니 걸려있는, ‘서울의대 출신의 원장임을 강조하는 병원이었다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이것저것 검사를 받다가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의사가 질문을 했다.


평소 약 드시는 거 있나요?”

저 공황장애 약 먹습니다.”


의사는 나의 말이 끝나자 코웃음을 치면서 중얼거렸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무슨 공황장애 약을 먹어요?”


<‘생명을 다루는 의사’ 라는 사명감>

 

 의사의 말을 듣고,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을 상품으로 치환하여 가치를 매긴다면 그 의사는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임이 분명하다. 소개팅 시장에 던져놓으면 가장 메리트 있다는, 명예와 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끝없는 선망을 받는 ‘의사’라는 직업. 그러나 의사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듣는 순간,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을 다룬다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저런 선입견을 가지고 일을 한다니. 한국 사회에서 ‘서울의대 출신 의사’라는 상품의 가치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상황이었다. 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도, 정신과에 대한 선입견이 ‘공황장애는 연예인이나 앓는 병’이라고 알려져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의사는 다른 직종과 달리, 대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길이 정해진다. 그래서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어릴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며 공부를 하고 의대에 입학하려고 한다. 점수가 되지 않으면, N수를 해서라도 들어가려고 하는 곳이 바로 의과 대학교다.

 

그러나, 의과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들은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의과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 중에, 의사가 되기 위해 국가고시를 쳐야한다는 것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꽤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저 성적이 높아서, 부와 명예를 위해 ‘의과대학교’를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의과대학교에서는 입학시험에 단순히 수능이나 내신 성적 반영이 아니라 다중 미니 면접이라는 'MMI(Multiple Mini Interview)'을 실시한다. 성적뿐이 아니라 의사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덕목과 인성에 관한 자질을 평가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므로 무엇보다 윤리 의식과 사명감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나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의 특성 상, 의사들은 환자들을 긴 호흡으로 오래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외상이 있어서 수술이 가능한 과와 같은 경우,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상처가 있기에 즉각적인 처치가 가능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는 조금 다르다. 환자와 끊임없는 상호 작용이 필요하고, 환자의 긴 싸움을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단순히 그 환자의 우울감, 불안감과 같은 증상의 호소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자의 전반적인 인생에 대해, 전인적 요소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 ‘술기’ 이외에도 인문학적인 사고와 환자와의 소통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의료 제도적 한계 : 3분 진료>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3분 진료’라는 기형 진료 시스템은 이미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조차 환멸을 느낀 지 오래다. 정신건강의학과는 더더욱 그러하다. 진료실에서 한정된 시간 짧은 시간 내에 환자의 이야기를 모두 듣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의사들은 꾸역꾸역 밀려드는 환자들을 감당하기 버거워하고,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을 환자가 아닌 ‘고객’이자 ‘하나의 증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결국 그런 정신건강의학과의 열약한 진료 현실 때문에, 의사와 얼굴도 보지 않고 약만 처방하겠다며 1주일, 또는 2주일에 한 번씩 들려 약만 타가는 환자들도 허다하다. 약을 투여하고 난 뒤 경과에 대한 자세한 관찰도 없이 환자는 병원에 가서 약만 처방받아 스스로 약을 기계적으로 복용하거나, 우울증이 극심하여 밖으로 거동이 힘든 환자들은, 본인이 아닌 제 3자를 시키거나 절차를 거치지 않은 불법 대리처방을 한다. 병원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인지하기에 불법 대리처방을 아무렇지 않게 해주는 곳이 종종 있다.

 이렇게 기형적인 진료 시스템에서, 환자들은 정신건강의학과의 약으로 겨우 통증만 억제한 채 살아가는 것이다. 늘 마음속에는 통증을 만들어 낸 시한폭탄 같은 원인이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은 묵살 당한다. 환자들은 시간적 한계로 인해 급히 진료를 마무리 하려는 의사들의 눈치를 보며 늘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를 뜨다가, 결국 진료를 포기한다. 

 의료계의 입장을 들어보면 기형적인 ‘3분 진료’ 시스템이 나온 것 또한, 그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3분 진료’가 아니면 의료기관은 적자가 나게 된다. 우리나라의 의료제도에 대해 제대로 된 수가체계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게 진료실 안에서는 고통의 맥락이 삭제됐다. 원인을 찾아내서 제거하는 것보다는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 치료의 목표였다. 그러나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우울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렵다. 

유명인이 자살을 택할 때마다 이를 실시간으로 대중에게 중계하는 글은 많지만,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글은 드물다.

(책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발췌)

 

 

모든 병이 그러하겠지만 특히나 정신 질환을 투병하는 이들은, 누구보다도 고독하고 외로운 긴 싸움을 하는 이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라는 특성 때문에 자칫하면 소흘해지기 쉬우며 아찔한 상황으로까지 이어지기 쉬운 병이다. 

그런 정신질환 환우들을 위해 우리나라의 조금 더 윤택한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가 이루어지기 위해, 국가의 정신건강보건의료에 대한 정책과 의사라는 직업의 사명감 두 가지가 보다 더 적절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한국 일보 "절대 안 걷겠다"는 조현병 환자 움직인 1년차 전공의의 기적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30514030000446

의협신문 ‘나는 일개 정신과 의사이고 싶다’ http://www.doctor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9699

청년 의사 ‘환자는 서운하고 의사는 억울한 3분 진료’ http://www.docdocdo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7200

이상민 , 박경민 , 노성원 , 서용진 , 최원석 , 황태연 (2014) 대한신경정신의학회신경정신의학신경정신의학 제53권 제2호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리더십, 윤리의식, 사회적 역할 및 향후 진출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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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12-01 11: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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