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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혜령 ]


대학을 다니는 동안 아쉬웠던 일이 한 가지 있다. 벚꽃이 한창인 시기는 늘 중간고사와 겹쳤다. 시험이 끝난 후 이제 좀 놀아볼까 하면 이미 벚꽃은 져버리고 햇빛은 쨍쨍해져 있었다. 가을학기도 마찬가지였다. 색색으로 물들어 있던 단풍이 시험만 치고 나면 겨울색을 띠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쉬웠던 것은 시험기간이 꽃놀이 시즌과 겹친다는 타이밍의 문제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시험기간에 하는 것이라곤 도서관 매점에서 컵라면 따위를 먹으면서 친구와 수다 떠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치 몇 주 감옥에라도 갇힌 것처럼 벚꽃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 안타깝다. 시험에 대한 압박감과 ‘난 공부를 제대로 안 했으니 즐길 자격이 없다’라는 허튼 자기규율이 문제였다. 꽃놀이가 뭐 별건가. 오며 가며 꽃들을 바라보고, 향기를 맡고, 감탄하는 것이면 충분한데.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는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시간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남자 주인공 팀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여행의 능력을 갖고 있다. 어두운 곳에 들어가 두 주먹을 꽉 쥐고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는 현재에 뭔가 잘못되었거나 실수를 되돌리고 싶을 때는 과거로 돌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짜릿한 순간을 다시 반복하고 싶을 때도 시간여행의 능력을 사용했다. 내게 만약 그런 능력이 생긴다 해도 특별한 걸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즐기지 못했던 봄을 누리고 싶다. 길을 걸을 때만이라도 시험생각을 접어두고 꽃들을 바라보고 싶다.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라


그런데 이런 상상이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닌 듯하다. 두려움을 느끼는 일을 평소에 자주 걱정한다고 해서 일이 더 잘 해결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일들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불안을 주는 경험을 모두 제거할 수는 없다. 그럴 때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한없이 매달리기보다는 시선을 긍정적인 것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스리니바산 필레이 교수는 긍정적인 것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뇌과학의 측면에서 설명한다. 무의식적인 두려움의 문제는 뇌가 항상 부정적인 일을 기대한다는 점이다. 뇌가 불안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더 불안을 주는 요인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일종의 관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단지 두려움이 더 자극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멋진 풍경을 보며 느끼는 즐거움보다 시험에 대한 불안이 더 자극적이기 때문에 뇌가 더 쉽게 압도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긍정적인 감정이 편도체 활성화를 지배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단지 주의를 이동시키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을 낮추는 것과 행복감을 높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병리적인 주제를 주로 다루었던 심리학이 긍정적인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정서를 연구한 학자들은 불행하지 않은 것과 행복해지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불행을 감소시킨다고 해서 행복지수가 올라가지는 않는 것이다. 이를 긍정·부정 정서의 독립성(independence)이라고 한다. 정서의 독립성에 대한 발견은 행복연구로 시선을 확장시킨 계기이기도 하다. 쉽게 생각해보면 며칠 굶주린 사람이 고구마 하나를 먹는 것은 불행을 감소시키는 것이라면, 사람들이 일상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려고 하는 것은 행복의 증가를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자가 허기짐을 달랜 이후 고구마를 더 많이 먹는다고 해서 행복지수가 증가하지는 않는다. 



행복 분야의 권위자인 일리노이 대학교의 에드 디너 교수는 <행복은 긍정적인 정서의 강렬함이 아니라 빈도(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versus negative affect)>라는 논문을 통해 행복은 강렬하게 느끼는 것보다 여러 번 자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하였다. 즉 복권 당첨과 같은 한 방이 아니라,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을 자주 느끼는 것이 행복지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흔히 기대하는 일확천금,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 1등을 하는 것,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이 엄청난 행복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금세 적응하고 무뎌져버린다. 즉 그런 것들이 기쁨을 주는 것은 맞지만 지속적인 행복감을 주지는 않는다. 쾌락의 속성에 따라 더 자극적인 기쁨을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강력한 한 방은 웬만한 즐거운 일에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일례로 복권당첨자들을 추적한 연구에서 그들의 행복감이 당첨되지 않은 이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돈과 유명세 등 남부러울 것 없이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연예인들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공황장애를 겪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철저히 현재를 사는 인간


심리학자 중에서도 인간의 긍정적인 면에 집중한 학자가 있다. 인간중심치료를 개발한 상담심리분야의 거장인 칼 로저스다. 그는 긍정적인 인간관을 가진 대표적인 심리학자이다. 프로이트가 인간을 성적 충동이나 공격적 충동에 결정되는 존재로 보는 관점이었다면, 로저스는 인간 본성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이 확고했다. 그의 이론에 의하면 인간은 신뢰할 수 있고 스스로 자원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또한 건설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힘이 있다. 적절한 환경만 조성된다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해가는 존재다. 


그가 창시한 상담기법인 인간중심치료 또한 치료자의 역할보다 내담자의 힘을 믿어주는 치료기법이다. 현재 보편화된 상담기법이 로저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정도로 그는 상담심리분야에서는 영향력이 크다. 그는 자신의 인간관에 의거해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완전히 기능하는 (fully functioning) 인간’을 제시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성숙한 인간이며 인간 본성에 기대어 최대치를 발현한 모습이다. 현재 자신의 자아를 완전히 자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경험을 풍부히 하는 방향으로 이동해나가는 개인을 의미한다. 그는 누구나 이 인간상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인간상의 대표적인 특징은 ‘실존적 삶’을 산다는 것이다. 실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철저히 현재의 순간을 살아내는 것을 말한다. 매 순간에 충실히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인간이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사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는 실존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다. 과거는 기억 속에서 왜곡되어 있기 마련이고, 미래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은 불확실의 시간이다. 우리는 오로지 현재만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살아낼 수 있다. 지난 일과 오지 않은 일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간신히 불안을 피해서 사는 삶은 실존적인 삶이 아니다.



바로 지금, 여기


실존적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지금, 여기’가 중요해진다. 현재라는 것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 매여 있지 않고 미래에 끌려가지 않는다. 물론 지나간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을 수도 없지만 ‘지금, 여기’의 이 순간은 딱 한 번 왔다가 영영 멀어져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기쁜 일도, 괴로운 일도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까닭이다. 모든 것이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순간을 누구보다 충분히 음미한다. 기쁨을 유보시키지 않음으로써 ‘지금, 여기’를 풍요롭게 만든다.


문학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지금, 여기’를 사는 인물은 단연 조르바이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품인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는 실존인물이다. 작가는 풍요롭게 삶을 살아가는 조르바를 만나고 난 후 그에게 매료되어 이 소설을 썼다. 조르바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그의 정신은 대화 속에서 잘 드러난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하고 있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세.’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그의 생각은 단순하고 유머러스하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가벼운 느낌일까. 그는 매 순간 에너지가 넘친다. 마치 매일 새 물이 솟아 나오는 샘물 같다. 불필요하게 에너지가 소진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깊이 있어지는 만큼 가벼워지는 것도 중요하다. 인생의 의미를 찾고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며 깊이를 더해가는 만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는 가벼움도 필요하다. 설령 내일은 힘겨운 출근길에 오를지라도 오늘 밤은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까르르 웃을 수 있는 것. 무거움만큼 가벼움도 우리를 잘 살게 하는 힘이다. 어떤 때는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이 겨우 터득하는 그 방법을 이미 몸소 실천하고 있는 존재를 만났다. 그건 바로 우리 집 개였다. 부모님 댁에서 키우던 개는 다리가 긴 푸들이었다. 그는 나를 아주 오랜만에 만나도 긴 다리로 내 키만큼 펄쩍펄쩍 뛰었다. 외출하고 돌아와도 또 펄쩍펄쩍 뛰고 꼬리를 힘껏 흔들었다. 가족들이 나갈 준비만 해도 그 불안감에 책상 구석 밑으로 들어가 덜덜 떠는 아이가 늘 한결같이 다시 만나면 또 반가워했다. 삐질 법도 한데, 또 혼자 둘까 봐 염려하는 것도 없었다. 의심도 없고 뒤끝도 없었다. 그 모습 때문에 더 마음이 짠하고 미안했지만 현재를 산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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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언급했던 영화 <어바웃 타임>의 결말은 이러하다. 팀은 여러 번 과거로 돌아가 몇 가지의 일들을 바꾸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큼직큼직한 일들은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는 결국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을 쓰지 않게 된다. 아무리 시간여행의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일어날 일은 결국엔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좋을 것 같다. ‘어떠한 순간을 한 번 더 살 수 있다면, 과연 인생이 완벽해질 수 있을까?’ 영화 속의 팀은 이렇게 답해줄 것 같다. 시간을 되돌려 순간을 바꾸는 것보다 매 순간을 완벽하게 살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후회나 미련보다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가 인생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이다. 그게 바로 그가 과거로 돌아가는 대신 현재를 100% 음미하는 삶을 선택한 이유일 것이다. 나 또한 시간여행의 능력이 주어진다고 해도 별 수 없을 것이다. 시험기간이면 발만 동동거리다가 시험기간이 끝나면 꽃이 다 졌다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내가 놓치고 있을지 모를 집 주위의 풍경들을 돌아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 어느 순간보다 완벽한 ‘지금, 여기’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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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2-16 07: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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