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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혜령 ]


몇 년 전부터 아이돌 스타를 선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저렇게 수많은 아이가 스타가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놀라움 반 걱정 반이었다가, 이내 그들을 보며 감탄을 했다. 나라면 저렇게 공개적으로 평가하고 순위를 매기는 곳에서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지 못했을 것이다. 제아무리 재능과 끼가 넘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저기서 탈락하거나 꼴찌라도 하는 날에는 아마 자괴감으로 방구석에서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만 같다. 그런 나와 비교하면 저렇게 도전하는 친구들의 용기는 정말 대단하다. 적어도 그들은 나처럼 학창 시절의 학예회 때 무대 위에 올랐다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내려와서 눈물을 쏟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꼭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평가를 피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중고등학교, 대학입시, 취업까지 수많은 평가에 맞서왔다. 합격과 탈락의 기로에 이미 여러 번 서보았다. 굵직굵직한 일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늘 평가는 일어난다. 하물며 마음에 두던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하는 일도 일종의 평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자존감을 공격받기 가장 쉬운 곳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서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도 평가는 계속된다. 평가의 자리는 공식적인 인사고과일 수도 있고, 업무 중 상사의 피드백일 수도 있다. 그런데 A・B・C・D등급으로 나뉘는 평가 결과와 그에 따라 조정되는 연봉, 팀장님의 코멘트가 나의 전부를 말해주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 때의 등수가 나의 모든 가치를 보여줄 수 없는 것처럼 회사의 평가도 어떤 기준에 의한 업무성과와 태도만을 말해줄 뿐이다. 만약 이 평가를 나 자신 전체로 받아들일 경우 위험해지는 것은 나의 자존감이다. 자존감이란 내가 나를 얼마나 존중하는지의 개념이다. 자신감이나 자존심과는 다른 의미다. 자존감이 높으면 혼자 있을 때나 누군가 나를 공격할 때나 큰 변화가 없다. 만약 부정적인 평가를 그대로 나 자신의 정체성이나 가치감으로 받아들이면 당연히 자존감은 낮아질 것이다.


한국사회에 자존감이 화두가 되기 시작하면서 자존감을 주제로 한 강연이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는 자존감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는 자존감을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사람들이 늘어난 것일 수도 있다. 직장인도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절반에 가까운 46.2%가 직장생활 후에 이전보다 자존감이 더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 중에는 ‘자주 지적 및 무시를 당함’ ‘비인격적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음’ 등이 포함되었다. 회사의 낮은 평가가 단지 ‘회사에서 수행능력이 우수하지는 않다’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다’로 이어지는 게 문제다. 나 스스로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는 것은 심리적 건강에 치명적인 일이다. 우리는 밥벌이를 위해 일정 부분 자존감을 팔아야만 하는 걸까. 



적의 열등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던가. 직장 내에서 자존감을 지켜내려면 타인과 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상처 주는 사람에 대한 이해다. 직설적으로 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아냥대거나 은근히 꼬아서 사람을 깎아내리기까지, 그들의 공격 기술은 다양하다. 분명히 웃으면서 대화하고 지나쳤는데 자리에 돌아와서 보니 가슴이 쿡 쑤신다. 그가 웃으면서 했던 말 속의 칼날이 내 가슴에 와서 상처를 낸 것이다. 이런 일들을 무시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런 사람일수록 목소리는 왜 그렇게 크고 말은 많은지, 피할 길이 없다.



적에 대해 이해해보자. 남을 잘 깎아내리는 사람은 오히려 자존감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또한 자신의 내적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화살을 타인에게 돌린다. 특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자신에게서 진정한 만족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무시하고 짓밟음으로써 쾌감과 자기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공격당하는 사람보다 공격하는 사람의 자존감이 훨씬 더 문제가 많다. 그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열등감’이다.


아들러는 그의 대표적 이론인 ‘개인(individual) 심리학’에서 열등감을 핵심 개념으로 다루었다. 그에 의하면 한 사람의 삶의 목표는 어린 시절 외부세계로부터 받은 인상에 의해 형성된 세계상과, 이러한 세계상을 바탕으로 삶에 대해 취하게 되는 특정한 입장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 과정에서 성격이 형성되는데 만약 결핍이 있었거나 응석받이로 길러지면 열등의식이 생겨나고 그것은 삶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만든다. 그렇게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계속해서 우월감을 추구한다. 타인에 대해 비교우위를 점하는 것이 인생의 중대한 목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타인을 깎아내리거나 공격하면서 자신의 우월감을 유지하게 된다. 


본래 열등감이 위처럼 부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측면에서 열등감을 갖고 있다. 불완전한 우리는 보다 완벽해지고자 하기 때문에 열등감은 필연적이다. 완전한 존재로 나아가게 만드는 에너지와 같다. 아들러는 병약했던 유년기를 회고하며 그 당시에 가졌던 열등감이 자신을 더 나은 존재가 되게 이끌었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었던 것이다. 의사로서 많은 환자의 얘기를 듣고 관찰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다시 확인하기도 했다. 건강한 열등감은 동기부여가 되고 자기성장의 동력이 되어준다. 문제는 지나친 열등감이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직장에서 타인들을 통해 우월감을 느끼려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아들러는 열등감이 병적으로 발현되는 이 같은 모습은 개인과 사회를 깊이 병들게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비합리적인 신념


이제 상처받는 나를 이해해보자.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다. 이를 인정욕구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이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를 바라며 이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인정욕구가 높은 이들은 거부나 비판과 같은 부정적인 반응은 피하고자 한다.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도 인정욕구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하지만 열등감과 마찬가지로 늘 과도한 게 문제가 된다. 인정욕구가 지나치게 높으면 비현실적인 사고를 갖게 되고 이것이 불안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아래는 대표적인 비현실적 사고에 해당되는 문장들이다.



•• 나는 주위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항상 사랑과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 나는 모든 면에서 반드시 유능하고 성취적이어야 한다.

••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유능해야 하고 모든 영역에서 완벽하게 일을 해내야 한다.

•• 일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은 끔찍스러운 파멸이다.



이와 같이 현실에 대한 잘못된 인지를 심리학 용어로 ‘비합리적 신념’이라고 한다. 학자에 따라서는 인지적 왜곡이나 인지오류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인지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는 그의 대표 이론인 합리적정서행동치료이론(REBT)을 통해 비합리적 신념을 탐색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서 고통받는 것은 사건이나 사람 자체보다 자신 안의 비합리적 신념 때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제안한 치료의 핵심은 그러한 신념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회 불안(social anxiety)’은 이러한 비합리적 신념이 만들어낸 대표적 증상이다. 사회 불안이란 특정한 사회적 상황을 지속적으로 두려워하고 피하거나 그에 대해 불안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주위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항상 인정을 받아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진 A라는 사람이 있다. A는 그 신념 때문에 매사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 중에는 그에게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그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은 그의 노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A는 자신에 대한 비판을 지나치게 날카롭게 받아들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할까 봐 초조해한다. 혹은 평가 자체에 지나친 불안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러한 A에게 필요한 건 무리한 노력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되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라는 사고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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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국내 많은 연구에서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거부를 피하려는 정도가 높은 사람은 우울과 불안 수준이 높고 삶의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은 타인의 피드백에 따라 감정기복이 크고 반복적으로 타인에게 승인받으려는 경향이 있지만, 언제나 인정을 받을 수는 없기 때문에 우울감과 불안감을 자주 경험한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나를 공격하는 타인과 별개로 나 스스로의 잘못된 믿음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한 나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말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나의 몫이다. 사람들의 모든 반응이 나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는 만족하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이 판단하고 생각하는 기준은 수많은 변수가 있는 데다 매우 다양하다.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 나의 능력치를 넘어서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도구가 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겠다.



대인관계가 반이다


퇴근시간도 훌쩍 넘긴 늦은 시간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의 직장에는 주기적으로 직원들을 평가해 당사자에게 코멘트를 해주는 시간이 있다고 했다. 오늘이 그 평가일이었는데 꽤 상처가 될 만한 피드백을 들은 모양이다. 듣자 하니 팀장님의 어투는 부드러웠다고 했지만 내용은 업무를 벗어난 인신공격이 분명했다. 직접 들은 것이 아니기에 아무리 좋게 해석해보려 해도 독설은 독설이었다. 보이지 않지만 친구가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부여잡고 힘없이 귀가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나는 별 위로도 조언도 해주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이런 일에는 뾰족한 대처법이 없으며 어쩔 수 없이 겪어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직장생활을 하는 한 감내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불만이라도 토로하려 하면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더러우면 관두든가!” 그래서 또 한 번 눈을 질끈 감고 출근을 한다.



우리가 1인기업이 되지 않는 한, 직장의 문제는 대인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람문제 때문에 이직을 택하기로 한 사람은 또다시 대인관계문제에 맞닥뜨릴지 모른다. 조직생활은 사람들과의 생활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람 간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사람한테 맞추는 게 일의 본질은 아니잖아? 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자신 있어. 일에만 집중하게 해달라고!’라고 외치는 사람을 지지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인생이 사람문제의 연속인데 직장이라고 별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각자의 자존감만큼은 지켜내야 할 것이다. 때로는 정신승리에 가까운 자기합리화를 하면서라도 마음이 ‘녹다운’되는 일만큼은 막아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작당해서 나를 욕할 때도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 네놈들이 나를 욕한다고 해서 내가 훼손되는 게 아니고, 니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내가 거룩해지는 것도 아닐 거다. 그러니까 니들 마음대로 해 봐라. 니들에 의해서 훼손되거나 거룩해지는 일 없이 나는 나의 삶을 살겠다.’


-김경, 《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중에서 소설가 김훈 인터뷰



연륜과 경험이 만들어낸 맷집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자세로 맞설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우선적으로 내가 수용하고 받아들일 것을 알아차려야겠지만 그 외의 것은 무시할 수 있는 깡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열등감에 희생자가 되어 너덜너덜해진 퇴근길이라도, 자기 전에는 오늘 하루도 잘 버틴 나를 스스로 인정해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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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2-02-24 07: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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