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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얌전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 소설 「좋은 사람」 분석을 통한,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과거와 벗어나게 된 계기 탐구
  • 기사등록 2022-03-16 07: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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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추예솔 ]


Jonathan Borb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착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어릴 적에는 그것을 최고의 칭찬으로 받아들였고, 착하게 행동했을 때 더 사랑받을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통상적으로 착하다고 평가받을 만한 행동을 하며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간혹 이 특성을 악용해 무시하거나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갈등을 조성하는 게 두려워 속앓이할 때가 잦았다. 얌전하고 순종적으로 대하는 것 말고 다르게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들이 으레 사춘기를 겪으며 청소년기를 통과할 때, 나는 열병처럼 떨어지지 않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고도로 시달려 온 셈이다. 


 


의문을 느끼게 된 계기


 

이런 내 특성에 대해 처음으로 의구심을 갖게 된 것은 스무 살, 심리학 교양 수업에서 ‘내사’라는 용어를 배우고 난 뒤였다. 내사는 타인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비판 없이 받아들임으로써, 그것이 나와 동화되지 못하고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말한다. 이 용어를 접한 순간 내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좀처럼 지울 수 없었다. 이에 따르면 나는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타인이 주입한 어떤 말에 의해 움직여 왔던 셈이다. 


물론 사람마다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기질이 있는 것은 맞으니, 어떤 면에서는 착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겠다. 그러나 내사는 사람이 한 가지 특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페르소나를 가진 입체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게 한다. 더욱이 가치관을 형성해가는 과정 중에 착한 것과는 무관한 면면을 발견하더라도, 스스로 억제하고 속으로 불만을 삭이는 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줄곧 괴리감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한편 착하다는 기준을 두고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칸트는 행위의 결과가 아닌 동기만이 도덕성을 판가름하고 선악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고 말 한 바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크고 작은 배려와 선행은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마땅히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회적 학습에 의한 것이며, 진정으로 타인을 돕고 싶다는 마음보단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자기중심적인 목적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대외적으로는 선하게 비치니 착하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혼란이 가중되어갔다. 

 



변화하게 된 계기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답은 임현 작가의 단편 소설인 「좋은 사람」을 읽은 뒤에야 비로소 찾은 듯했다. 「좋은 사람」은 ‘나’가 영화감독을 꿈꾸는 친구 ‘우재’와 멀어진 뒤, 그와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화자는 어느 날 우재의 후배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안타깝다'라고 전한다. 그러자 우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며 불같이 화를 낸다.

 

 “무슨 말이 그래? 착하다, 좋다, 그런 건 일종의 상태 아니냐? 그랬다가 안 그러기도 하는 거 아니냐? 그냥 너나 나 같은 사람이잖아. 왜 다들 무책임하게 좋았다고만 해? 그럼 좋은 사람 이외의 그 애는 다 어디로 가는데? 왜 함부로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

 

그렇다. 착하다는 것은 일시적인 특성이다. 물론 개인에 따라 그런 특성을 계속 안고 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을 단지 착하다 나쁘다 따위의 이분법적인 말로 나누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것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기질 중 하나일 뿐이며, 영구적이거나 고유한 성질로 보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요컨대 세상에는 선한 ‘사람’이 아니라, 선한 ‘행동’만이 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고 틀에 가두는 행위에 대해


 

이처럼 착하다는 말에는 맹점이 존재함에도 줄곧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시달려온 것은 수많은 평가 때문일지 모른다. 마치 이를 방증하듯, 「좋은 사람」에는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는 행위를 꼬집는 대목들이 여럿 등장한다. 어느 식당 주인의 말이 그중 하나였다. 식당 주인은 누군가 자신에게 전공이 뭐냐고 물었을 때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답하자, 분위기가 돌연 조심스럽게 흘러간 것을 떠올린다. 

 

 "왜 중요한 사람 대하듯 내가 이 대화를 이해하고 있는지 살피고, 모를 만한 주제는 피하려 드는지. 나를 두고 미안해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게 너무 빤히 보여서 불쾌하더란 말입니다. 왜 함부로 나를 배려하려 드나."

 

식당 주인에게 있어 대학을 나오지 않은 것 따위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고등학교에서 세무 행정을 전공했기에 그 분야에 있어 꽤 전문가였고, 자신에게 자문하라고 할 정도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한 일정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로 그를 차별했다. 겉으로는 배려로 포장돼 있으나 그 기저에는 상대에 대한 업신여김과 하대가 깔려 있었다. 이는 소설 내에서 화자가 우재를 위한 일이라고 합리화하면서, 그가 만든 영화 작품들을 함부로 평가하며 깎아내린 것과도 맥을 같이 했다. 

 

한 사람에게는 말로 전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복합적인 기억들이 얽혀 있다. 기억들이 쌓이고 뭉쳐서 그 사람의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지층처럼 남아 인격을 형성한다. 그러므로 어떤 대상을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설령 긍정적 의미를 내포한 단어일지라도 무성의하고 잔인한 처사일지 모른다. 더불어 타인이 원치 않는 평가는 자족 행위일 뿐이며, 타인의 본질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억측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를 다시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앓았던 나의 상황에 대입해본다. 어린 나는 왜 그리도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 발버둥 치면서 괴로워했을까. 함부로 누군가를 재단하는 일은 이렇듯, 마음속 골방을 빙빙 맴돌며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폭력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마치며 


 

지금은 어느 정도 타인의 평가에 관대해졌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고 넘기는 여유와 유연함도 생겼다. 그러나 오래도록 혼자 콤플렉스를 앓아온 유아 청소년기의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은 점차 바뀌는 추세지만 여전히 ‘말 잘 듣고 착한 아이’를 이상적으로 보는 시선이 팽배하다. 그러니 나처럼 그 안에 갇혀 자신을 좀먹는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단언 못 하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한 가지 제안을 해보려 한다.


앞서 “너는 착하잖아”와 같은 평가는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행위’에 초점을 맞춘 칭찬은 이와 사뭇 다르게, 부담을 한결 덜어주는 방식으로 다가왔던 것을 기억한다. 가령 “아까 내 것까지 세심하게 챙겨줘서 고마웠어.”라든가, “내 얘기를 네 일처럼 잘 들어주고 공감해줘서 마음이 편해졌어.”라는 식의 칭찬 말이다. 핵심은 단지 특정 행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손쉬운 귀결을 내리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착하다’는 말보다는 ‘착한 행동’이라고 표현을 달리해 칭찬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그러면 제2의 나를 낳지 않게 될 것은 물론, 한 아이가 긍정적인 정체성을 획득하고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도록 도울 테다. 이와 같은 방식은 언뜻 사소해서 무용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게 숱하게 상처를 입힌 것 역시 그 사소한 언어들이였듯, 작고도 세심한 문장의 변주가 끝내 큰 변화를 끌어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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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임현, 「좋은 사람」, 『그 개와 같은 말』, 현대문학, 2017.10.13.

김춘경 외 4인, 『상담학 사전』, 학지사, 2016.01.15.

임마누엘 칸트, 『윤리형이상학 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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