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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 이전에 자녀, 자녀 이전에 '나'이고 싶다 - '부모화'를 벗어나 나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
  • 기사등록 2022-03-18 13: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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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박은지 ]




사진출처: pixabay.com 


인간은 태어나면서 사회 환경에 노출되고 그 안에서 변화하고 성장한다. 그중 개인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회 환경이자,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사회화 기관이 바로 가정일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는 양육자의 보호 아래서 가족 밖의 세계를 탐색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사회의 규칙과 질서를 배우게 된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을 책임질 힘이 생기게 되면 부모와 분리된 독립적인 성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이러한 성장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미숙하고 누군가에게 돌봄과 관심을 받아야 할 아이가 그에게 주어진 환경에 의해 어른이 되었어야만 했다면 어떨까? 보호받기 이전에 보호해야만 했고, 어리광을 부리기 전에 배려해야만 하는 역할을 가지게 됐다면 말이다.



자녀의 '부모화'



부모화가족체계에서 발생하는 병리적 현상 중 하나로, 어린 자녀가 자신의 나이 때 필요한 욕구와 행동을 억압하면서, 부모나 형제, 자매를 대상으로 부모, 친구, 배우자 등의 역할을 수행하고, 이 역할들을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녀가 자신의 발달단계에서 필요한 돌봄과 관심을 부모로부터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자신이 부모를 돌보거나 부모를 대신하여 책임지고자 노력하는 ‘역할반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모화로 인한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 부모화 경험이 요구되는 연령에 맞고 책임이 적절하고 공평하게 주어졌을 경우, 개인은 책임감과 자율성 및 타인 배려를 향상하고 성인기의 긍정적 역할을 배우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정도가 과도한 수준일 경우이다. 가족 역동이 특정 자녀에게 성인과 같은 보호자의 역할을 장기간 지속해서 요구하게 된다면 자녀는 극단적인 무력감, 과도한 충성심을 갖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늘 희생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배려 받고 싶은 욕구를 억압하고 소외시킴으로써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부모화'의 문제점



부모화된 자녀들의 특성은 주로 어린 시절에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겉으로는 유능하고 적응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뿐만 아니라 본인도 자신의 심리적 문제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후기 청소년기와 성인초기 전환기가 되면 심리적인 어려움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책임을 느끼고,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며, 자신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며 성장하게 된다. 늘 받기보다는 주기만 했던 삶으로 인해 종종 자신이 비어있거나 ‘내면에 구멍이 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또한 자신이 힘들 때 타인이 도와줄 것이라고 신뢰하지 않으며 자신이 타인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을 때, 관계가 손상될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나를 미뤄두고 타인이 중심이 된 삶은 우울과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자아정체감 형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족으로부터의 '자아분화'



당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이제는 버겁게 느껴진다면, 나와 맞지 않았던 ‘부모’의 역할을 벗어나 ‘나’의 삶을 살고 싶다면, 이제는 가족에게서 벗어나야 한다. 

이 말은 가족을 버리라는 말도, 개인에게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 개개인의 삶은 독립되어 있으며 그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가족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은 심리내적인 차원에서는 자신의 가족으로부터 정서적 분리를 성취하는 정도로 이성과 감정을 분리할 수 있으며, 대인관계 차원에서는 자신과 타인을 분리할 수 있는 ‘자아분화’를 의미한다. 


당신의 희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당신에게 부여된 가족의 짐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지어야 하는 것이다. 잘못된 가족역할을 바로잡기 위해선 당신의 의사와 감정을 가족에게 표현하고, 항의하며, 거절해야 한다. 




사진출처: pixabay.com 




행복을 위한 투쟁



고정된 역할패턴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지금까지 유지하던 가족체계를 붕괴하고 다시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당신은 가족의 비난으로 인해 허무감을 느낄 수도 있으며, 가족에 대한 책임을 버린다는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건강한 가정과, 나 자신의 삶이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로 가기 위해선 지금의 병리적인 가족체계를 부숴야 한다.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수 있으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성장할 수 없다. 착한 아이. 어른스러운 아이. 외부의 기대로 인해 만들어낸 이상적인 성인이 아닌, 온전한 자신으로 독립하여 날아오를 수 있도록. 필자는 당신들의 투쟁을 응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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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문은미, 최명선. (2008). 부모화 경험과 자아분화가 청년기 자아정체감에 미치는 영향. 人間發達硏究, 15(2), 103-122.

신말숙, 심혜원. (2017). 부모화에 관한 이론적 고찰.한국심리학회지: 일반, 36(1), 61-80.

은주, 유금란. (2020). 부모화된 자녀의 탈부모화 경험 연구: 성인초기여성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복지질적연구, 14(1), 97-132.

조혜정, 이윤주. (2014). 대학생의 부모화 경험과 자아분화가 우울에 미치는 영향. 상담학연구, 15(6), 2345-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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