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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모르는 길을 아이에게 묻지 마라 - 그런 거 묻기 있기 없기?
  • 기사등록 2022-03-22 06:22:30
  • 기사수정 2022-03-23 17: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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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신문_The Psychology Times=김경미 ]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내 오래된 스프링 노트 첫 장에 적혀있는 시다.



중고등학교 시절 윤동주의 ‘벨 헤는 밤’을 읽고 또 읽었던 나는 별과 하늘과 시를 좋아했다. 문학소녀의 기질이 다분한 나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첫 시작으로 감명 깊었던 문구와 시들과 나의 자작시들을 노트에 적어갔다. 노트 첫 장을 장식한 시처럼 맑은 시를 쓰고 싶었던 나는 국어사전에도 애착이 있었다. 끼고 읽지 않으면서도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국어사전을 애착 소장품처럼 늘 책꽂이 앞에 꼽아놓았고 국어 시간을 좋아하던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성장하면서 국어 선생님이 되는 문턱이 높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타협점을 찾아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며 유아교육의 길이 더 크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을 걸어 놓고 보니 나는 참 탁월한 선택을 하였고 내 길을 맞게 찾아 걸어왔다. 유아교육과 교육 그리고 상담은 내가 걸어 온길, 걸어갈 길, 걸어가고 싶은 길이다. 지금은 시집을 자주 읽지는 못하지만 난 여전히 지하철에 장식된 시들을 보면 그곳에 한참 머물러 서 시들을 감상한다. 여전히 나는 문학소녀이고 싶은가 보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일이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둘째 딸이 물었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 너무나 참신한 질문이었다. 다 큰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구나? 아이의 질문은 "엄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었어?"가 아니었다. 현재 진행형 “엄마는 뭐가 되고 싶어?”였다. 사실은 그 질문은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을 마음속의 나와 대화했었다. 아니 그 질문은 늘 ing다. 정확히 말하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아주 오래전 20년 전부터 노트에 적어 놓고 바라보고 있어서 명확하고 간절하지만 그 방향성에 대한 답은 늘 희미하게만 다가왔다.



나는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천직으로 알고 신나게 그 길을 걸어가다 또 다른 꿈이 생겼다. 그 길에 있었기 때문에 품을 수 있었던 비전이었다.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어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가정과 사람들의 마음을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유아교육보다 더 큰 범주의 교육학과 상담을 열망하게 되었고 20대 중후반 일하면서 다시 교육학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 후 결혼을 해서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며 관심 있었던 아동학과 상담 과목의 수업들을 들으며 석사가 끝나면 박사를 진행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분야가 잘할 수 있는 유아교육인지 교육학인지 아니면 마음의 비중이 큰 상담인지를 많이 고민했었다. 지금은 언제 그렇게 공부를 했었는지도 까마득하고 엄마가 되고 나니 나에게 투자할 그만큼의 기회비용이 있다면 써야 할 곳이 너무나 많아졌다. 꼭 더 공부해야 하는 이유도 없기에 지금은 공부할 분야가 아닌 일해야 할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종국에는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을 세우고,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주고,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어른들을 만나는 것인데 그 길의 입구를 어떻게 찾아갈지를 늘 고민한다. 어쩌면 그때를 한참 뒤로 잡아놓고 아이를 키우면서 마음속으로 묻고 또 묻는 과정이라 더 간절하고 막연했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아직 일 할 때는 아니라고 마음먹었기에 아이들을 키우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하자고 생각했다. 관심분야의 책을 읽거나 마음과 뜻이 맞는 지인들과 책을 정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독서 모음을 진행했다. 또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예전에 함께 공부했던 지인을 통해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학생상담자원 봉사자를 알게 되어 지원을 했다.


면접을 거치고 합격을 한 후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연수과정을 거쳐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을 만나 집단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무기약 보류 상태이지만 아이들과 나누는 시간에서 보람과 가치를 느꼈다. 지금도 나는 마음 사용법을 공부하며 동화로 상담을 하는 동화 심리상담사를 마치고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들을 준비하고 있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한 걸음씩 걷고 있다.       


친구랑 통화를 하는데 친구가 자기의 딸이 이상한 거 아니냐며 어떻게 초등학생 고학년씩이나 돼서 이렇게 만날 꿈이 바뀌느냐고 하소연을 했다.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기만 하고 어렵게 하나를 얘기하고 나면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이 바뀌어 있으니 이래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웃음이 나왔다. “너는 뭐가 되고 싶었니? 그 대답이 그렇게 쉽니?”라는 내 말에 친구도 찔리는 것이 있는지 함께 웃었다.


나는 감히 딸들에게 뭐가 되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그게 물으면 자판기에서 캔음료가 나오듯 딸가닥하고 나올 수 있는 질문이란 말인가? 난 아직도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답을 찾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어린 딸들에게 마치 답안지가 있는 질문을 하듯 쉽게 물을 수 없는 것이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냐는 아이의 질문에 처음에는 정면승부의 답을 하지 못했다. “엄마는 엄마가 되고 싶었지. 그래서 행복하게 너희들의 엄마가 되어있지.”라고 말했다. 이 대답은 내 진심이기도 했지만 왠지 ‘꿈은 이루어지는 거야’라는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에서 대뜸 나온 대답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구차한 말들이 이어졌다.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 그래서 아이들을 가르쳤지. 지금은 너희들을 키우고 있고.”라는 답을 하고도 뭔가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 같았다.


딸은 엄마는 뭐가 되고 싶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엄마는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정직하게 딸 앞에서 진심을 토했다. “엄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고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어. 소중한 아이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주는 사람들을 가르치고도 싶어. 그래서 엄마는 지금도 준비하고 있고 길을 찾고 있어.” 말이 길어진 엄마와는 다르게 딸은 씩 웃으며 간단명료한 한마디를 남기고 사라진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심중에 늘 품고 있는 꿈이 있는 나조차도 꿈을 물어보는 아이에게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마도 면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른인 내가 이렇다면 아이들은 어떨까? 천방지축 대통령을 말할 수 있을 때면 좋으련만 조금만 더 크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 너는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꿈을 물어오면 덜컥 겁이 나는 것이다. 우선은 자기가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는커녕 내가 누군지 조차도 잘 모른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계속적으로 알아가야 하는 나이가 아닌가?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내가 꿈꾸는 내가 될 수 있을지 아이들도 미지수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말하지 못한다.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겠기에 나도 모르는 길을 나는 아이에게 물을 수가 없다.      


길이라는 것은 얼마 큼을 걸어간 후에 다음 길이 보인다. 때로는 걷다 보면 여러 갈래 길이 눈앞에 펼쳐져 갈래 길 앞에 잠시 멈추어서 생각해야 한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 한참을 고민한 후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심사숙고하고 걸었는데도 심지어는 이 길이 아닌 가봐하며 갔던 길을 되돌아와 다른 방향으로 다시 걸어가야 하는 일도 생긴다. 그런데 걸으면서 알게 된다. 길은 가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닌, 가면서 무엇을 보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걸으며 보게 된 모든 것들이 나의 눈이 되어 시야를 넓혀준다. 잘못 걸어갔다 온 길 같지만 그 걸음이 걷는 힘의 근력이 되어준다. 


아이에게 길을 알고 있는지 수시로 물으며 정답지를 들고 있는지 확인하지 말자. 정답이 있듯 오직 한길만으로 걸어가기를 바라지도 말자. 인생이라는 여행지에서 내가 가야 할 오직 한길은 없고 잘못 다녀온 길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아이는 잘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여전히 찾으며 물으며 가고 있지 않은가? 나도 알지 못하는 길을 아이에게 묻지 말고 간단한 이 한마디면 족한 것 같다.


“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딸이 내게 가르쳐 준 한마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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